좌선 후의 질문시간은 항상 시끌벅적했다. 사람들은 서로 먼저 질문하려고 북새통을 이뤘다. 하지만 나는 좌선 시작 후 10분이 채 못 되어 다리에서 생기는 통증을 참기가 어려웠다. 집중은 안 되고 다리에서 오는 통증 때문에 두려운 마음도 일어나 제대로 배우지도 못하고 중도에 하차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상은 매력이 있었다. 코끝에 정신을 집중하고 호흡을 하다보면 마음이 일순간 고요해지며 통증이 있는 중에도 통증을 대상으로 볼 수 있는 순간이 가끔 있었다.
계속 배워보고 싶어서 위빠사나 명상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곳을 찾게 되었다. 그 때 가게 된 곳이 압구정동의 보리수 선원이다. 거기에서 2주 동안 초보자수행을 배웠다. 내게 가르침을 주신 분은 붓타락키타 스님이셨다.
외국인 스님을 만날 기회가 없었던 내게는 자주색의 이상한 천으로 두른 듯한 가사를 입은 스님을 가까이서 뵙는 것만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스님께서는 이 수행법이 부처님께서 깨달은 수행법이라 하시면서 이 수행법은 몸과 마음을 있는 그대로 보는 수행법이라고 하셨다. 그러시면서 ‘알아차림’이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알아차림을 가지고 보는 것이 아니면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다.
‘몸과 마음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 알아차림…,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했다.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은 어떤 것이든 그대로 인정하고 그 자체로 수용하고 거기에 어떤 것을 더하거나 빼지 않는 것을 말 한다’ 라는 스님의 법문을 들으며 나의 그 동안의 삶이 얼마나 왜곡된 고정관념을 가지고 모든 것을 보며 살아왔는지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었다.
2주간의 초보자 수행을 끝내고 보리수 선원에서 간간이 경행과 좌선을 했다. 경행할 때 발의 움직임에 명칭을 붙이면서 알아차리고 또 좌선을 할 때 배의 일어남 꺼짐을 보면서 명칭을 붙이며 알아차림을 계속해갔다. 때로는 통증과 싸우기도 하고 혼침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면서 미얀마 마하시센타의 수행법을 익혀나갔다.
그러다가 지금의 나의 스승인 묘원법사님께서 양재동에 있는 여성인력개발원에서 마음을 보는 수행법을 가르치신다는 것을 인터넷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마음을 보는 수행법이라니 얼마나 근사한가? 모든 것은 마음에서부터 비롯되는데 마음을 보는 수행법을 배워서 마음을 볼 수 있다면 만병통치약을 얻을 것 같아 당장 양재동으로 달려갔다.
처음 간 날, 법문에 “마음을 보려고 해도 마음을 내지 못해서 마음을 못 본다. 마음을 보는 방법을 몰라서 못 본다. 무엇을 해도 마음을 보지 못하면 뿌리가 남아있다. 마음은 내 마음이 아닌 그 순간의 마음이다”라는 명쾌한 법사님의 말씀에 이젠 제대로 된 수행방법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아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희열이 올라왔다.
법사님의 옷자락이라도 잡고 따라 가면 매일 나를 휘젓는 흙탕물 같은 마음을 보게 될 것 같아 신이 났다.
위빠사나는 빨리어로 위(vi)와 빠사나(passana)의 합성어이다. ‘위’는 분리하다, 해체하다의 뜻이 있고 ‘빠사나’는 통찰하다, 꿰뚫어본다는 뜻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몸과 마음을 분리해서 보는 것 자체가 위빠사나 수행의 시작인 것이다.
있는 그대로 보아서 욕심내고 성내는 것을 해결하는 수행이 위빠사나 수행이다. 부처님께서는 이 사념처 위빠사나 수행만이 깨달음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고 <대념처경>에서 보증하셨다.
나는 수원포교당에서 기초교리를 배우던 때를 떠올렸다. 당시, 스님들께서는 욕심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는데 나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욕심이 내려놓아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 수행법은 욕심을 내려놓는 방법을 알려 주고 또 부처님께서 보증까지 하셨다니! 귀가 번쩍 뜨였다. 그때부터 나는 논현동에 있는 한국 위빠사나 선원에서 수행을 시작했다.
한국 위빠사나 선원에서는 사념처 수행을 염처별과 단계별로 상세히 가르치고 있었다. 물론 미얀마 수행방식인 마하시 센터의 방식과 쉐우민 센터의 방법을 병행하는 것이다.
염처별 수행법은 신수심법 사념처를 세분하여 몸을 알아차리는 신념처, 느낌을 알아차리는 수념처, 마음을 알아차리는 심념처, 법을 알아차리는 법념처로 나누어서 가르치는 것이고, 단계별 수행법은 1단계 모양 알아차리기, 2단계 성품 알아차리기, 3단계 전면에서 알아차리기 등 단계로 나누어서 가르치는 것이다.
이렇게 염처별, 단계별로 가르치니 초보자도 어렵지 않게 수행을 따라 할 수 있었다.
내가 위빠사나 수행을 하면서 인생의 관점을 바꾸게 된 것은 <아비담마> 논장을 접한 뒤였다. <아비담마>에는 “사람은 누구나 선한마음, 불선한 마음, 과보의 마음, 아라한의 마음의 4가지를 가지고 있다. 선한 마음은 선한 과보를 받고 불선한 마음은 불선한 과보를 받는데 사람의 태어남에는 이 네 가지 마음이 어떤 비율로 섞여 있느냐에 따라 축적된 성향이 다르게 태어나며, 그 태어난 성향은 바꿀 수 없다”고 나온다.
원인 없는 결과는 있을 수 없다. 원인을 잘 지워 놓으면 결과는 자연히 잘 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현재의 환경에 처한 것은 어느 생에선가 그러한 원인을 지어 놓은 때문이다. 이 얼마나 명쾌한 사실인가.
또한 경전에는, “사람이 죽으면 시간이 멈춰질 수 없듯이 한 순간도 어디에 머물지 않고 31계의 세계 중 어느 한 곳에 즉시 태어난다”는 사실도 적혀있었다. 죽어서 자신의 악업 때문에 어디에도 못가고 떠도는 혼이 있다고 알고 있었는데 그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죽은 후에 영가천도를 해서 그 사람을 좋은 곳에 태어나게 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지한 일인지를 알게 되었다.
예전에 집안에 우환이 끊이지 않는다고 영가천도재를 지냈던 일이 생각났다. 나는 비로소 미혹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위빠사나 선원을 다니며 또 한 번 겪은 획기적인 일은 작년 12월에 미얀마의 쉐우민 선원으로 집중 수행을 다녀온 일이다. 쉐우민 선원은 마음챙김 수행을 하신 큰스님이 계셨던 선원답게 자율적이고 부드럽다. 그 곳의 신도들은 큰 스님이 살아 계실 때는 수시로 와서 큰 스님을 친견하곤 했다고 한다. 큰스님께서 수행을 많이 하셔서 마음에 번뇌가 없기에 번뇌의 불을 끄러 큰스님을 친견하러 온 다는 것이다. 지금은 큰 스님 안 계시는데도 테이프 법문을 들으러 재가 신자들이 많이 온다고 한다. 그 곳 사람들의 신심이 부러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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