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을 끝내고 집에 돌아온 큰애는 얼굴에 희색이 만연해서 합격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첫째 시간에 수학문제를 푸는데 점수 배당이 큰 주관식 2문제가 풀리지 않아 고심하다가 1교시 끝나기 10분 전쯤 갑자기 풀이 과정이 환히 머리에 떠올랐다고 했다. 시간이 부족할세라 염려하면서 머리에 떠오른 풀이 과정을 일사천리로 쓰고 답을 표기하니 끝나는 벨이 울렸다고 했다.
큰애의 얘기를 듣는 순간 부처님의 가피력이 시험장에 있는 큰애에게 전해졌음을 느꼈다. 나는 집에서 기도할 때의 상태를 큰애에게 얘기해 주니 큰애도 좋아하면서 더욱 합격을 확신했다.
남편 또한 그 해 700명이 응시하여 7명이 합격한 관세사 시험에 100:1의 어려운 관문을 최고령으로 통과하였다. 사실 난 남편의 시험 합격 기도는 하지 않았다.
그 당시 남편은 안정되고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시험에 통과하지 않아도 그만이라는 생각과 욕심이 많으면 하나도 이루지 못할까 염려해서였다. 하지만 부처님의 가피력은 우리 가족의 소망을 다 이루어주셨다.
아들의 합격 발표를 듣던 날 오후, 절에 가서 감사 공양을 올리고 지장보살 원불과 호법발원금을 신청했다. 두 아이에게 일요법회에 가서 부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자고 하니 순순히 따라왔다. 그 후 원하는 대학에서 적성에 맞는 전공을 찾아 공부하던 큰애는 대학불교학생회에도 스스로 동참하였고 부처님의 가피 속에서 세상에 필요한 인재로 성장하고 있다. 작은 아이는 고등학교 때부터 엄마가 절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할 때 저들의 힘이 필요하다고 하면 친구까지 데려와서 도와주고 대학에 진학한 후에는 사찰 청년부법회에도 참석하는 신심 있는 불자가 되었다. 지금은 군대에 있으면서 일요일마다 군법당에 빠지지 않고 동참하여 참선도 하고 기도도 하면서 군 생활에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고 한다.
나 역시 12월 교육이 끝난 뒤에도 일요법회에 꾸준히 참석하여 스님의 법문을 듣고 불심을 키워나갔다. 다음 해 여름에 남편이 직장에서 오랫동안 바라던 일이 이루어졌다. 나도 하는 분야에서 인정을 받아 강의 요청도 많아지고 점점 더 바쁘게 되었다. 그러자 교만심과 게으름이 발을 뻗쳐 일요법회에 빠지는 횟수가 잦아지고 잠들기 전에 기도도 하지 않게 되었다. 일상이 바쁘다는 핑계를 대면서 나를 합리화했다. 불심으로 세상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내 생긴 대로 내 잣대로 세상이 만들어지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초발심으로 무장되었던 나의 불교입문기는 부처님의 무한한 가피력 속에서 은혜만 받고 1년 정도 만에 끝났다.
1997년 늦가을, 49년의 인생을 성녀처럼 정말 남들에게 베풀기만 하며 삶을 살았던 언니가 세상을 떠났다. 원래 약한 몸을 돌보지 않고 기도와 봉사의 생활을 무리하게 했기에 병을 얻어 일찍 떠났다.
죽기 전에 언니는 친정어머니에게 자신의 종교는 기독교이니 49재니 하는 의식을 하지 말고 화장을 해달라고 했다. 인과가 명확한 연기법으로 볼 때 언니가 현세에서 지은 공덕으로 좋은 몸을 받을 것이라고 확신하니 언니의 죽음에 대하여 그토록 애통해 했던 감정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장례를 치른 그 무렵 우리나라는 I.M.F 경제체제에 들어가고 다음해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평생직장이라고 생각했던 직장인이 거리로 내몰렸다. 남편은 내가 불교를 만났던 해에 우리 가족에게 있었던 좋은 인연으로 준비해 두었던 자격증을 가지고 사업을 하기로 하고 직장을 퇴직했다.
그 동안 절에 가는 것이 뜸했던 나는 언니의 죽음과 남편의 제2의 인생 시작을 위하여 다시 절을 찾았다. 초발심으로 돌아가 불교 서적을 사서 읽고 차 속에서도 늘 불교 방송을 켜놓고 틈나는 대로 신심을 키웠다. 남편도 나하고 같이 일요법회에 나가고 나보다 더 많이 불교 서적을 구해다 읽곤 했다.
99년은 우리 부부가 함께 신심을 키우는 특별한 해였다. 3월에 우리 부부는 내가 처음 불교교리강좌로 인연 맺은 원찰 스님에게서 수계를 받고 ‘묘관’과 ‘원명행’이라는 불명을 받았다. 그 해 여름휴가 때 남편과 나는 송광사에서 실시하는 여름 수련회에 동참하였다. 나는 정진반, 남편은 인욕반에서 4박 5일의 짧은 출가로 큰 깨달음의 시간을 보내면서 정말 색다른 체험을 할 수 있었다. 태어나서 말을 하지 않고 지내본 가장 긴 시간으로 우리가 말을 통하여 얼마나 많은 죄업을 짓고 시간을 낭비했는지 알 수 있었다. 또한 묵언을 하니 나 자신 속에 들어가 자신을 관조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수련회에 참석하여 스님들의 수행생활을 짧은 시간이나마 체험해 보면서 나의 나태한 신행 생활에 스스로 채찍을 가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신행 생활에 회의가 생기고 게으름이 나면 사찰에서 행하는 수련회에 참석하여 자신을 돌아보라고 모든 재가 불자들에게 권하고 싶다. 그리고 그 해, 부처님께서 탄생하신 인도 성지 순례도 하였다.
10년의 불법인연동안 나는 좋은 스승을 만나는 복을 누릴 수 있었다. 내가 불교와 인연이 닿을 수 있도록 내가 사는 동네에 포교당을 열어주셨던 도피안사 송암 스님과, ‘어떤 사람이 있어 논두렁 밑에 앉아 마음을 청정히 하고 있으면 그 사람이 스님이고 그 곳이 법당이라는 것’을 깨달게 해 주신 정토회 법륜 스님, 해박한 경전강의로 부처님의 사상을 깊이 있게 공부하고자 발심케 해주신 금강선원 혜거 스님, 그리고 서울불교전문강원에서 지금 <서장>을 강의하시는 중앙승가대 총장 종범 스님도 <불교를 알기쉽게>라는 책을 통하여 6년 전에 이미 만났던 스승이다.
나는 40대 초에 불교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을 내 인생의 큰 행운으로 여기고 있다. 더 일찍 만났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수행할 수 있는 건강이 있을 때 인연이 찾아온 것은 친정 어머니의 ‘관세음보살’ 염불공덕과 그나마 전생에 닦아놓은 선근공덕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인간으로 태어났을 때 지금 닦지 않으면 어느 세월에 깨치리! (끝)
신행수기 일년내내 받습니다
삶을 살아가면서 가슴속에만 꼭꼭 담아두었던 감동깊은 신행체험들을 진솔하게 적어 보내주십시오. 연중 접수한 신행수기 가운데 우수작은 소정의 고료를 드리고 신문에 연재하며, 연말에 최종 심사를 거쳐 시상합니다.
● 주제: 신행 및 수행 체험, 불심으로 고난을 이겨낸 이야기
● 분량: 200자 원고지 30매 안팎(A4용지 4장)
● 접수처: (110-030) 서울시 종로구 청운동 54번지 현대불교신문사 편집국 신행수기 담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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