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중학생이던 무렵이다. 어머니는 사업에 실패하고 병든 아버지를 대신하여 생계를 꾸리기 위해 장사를 시작하셨다.
그 무렵 어머니는 4남매의 앞길을 위하여 초하루마다 팔공산 갓바위 부처님께 기도 가시는 것으로 미래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았다. 그보다 더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는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관세음 보살’을 입에 달고 사셨다.
1949년생이던 언니는 6·25전쟁 통에 병에 걸렸다. 사경을 헤매던 언니는 그 당시 구하기 힘들었던 마이신으로 살아났지만 약의 부작용 때문인지 늘 허약했고 다리가 안으로 휘는 불구의 몸으로 자라게 되었다. 교육열이 남달랐던 어머니는 언니의 힘든 처지를 감안하여 가톨릭 재단에서 운영하는 사립초등학교로 입학을 시켰다. 나 또한 언니와 같은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가톨릭 대구대교구에서 운영하는 이 학교는 한 학년에 여학생들만으로 두 반이 있는 학교였다. 선생님들 중에는 수녀님이 상당수 있었다. 그 당시 많은 반 아이들의 장래 희망이 수녀였을 정도로 학교의 모든 행사는 종교의식으로 행하여졌다. 자연히 가톨릭이라는 종교는 익숙할 수밖에 없었다. 어린마음에 친구의 집에 가서 학교 교실에 있는 성모마리아상과 예수님의 십자가상이 걸려 있으면 은근히 부러워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늘 ‘관세음보살’을 염하였고 언니와 나에게 성당에 가라고도, 절에 가자고도 말하지 않으셨다.
대학 4학년 때, 가톨릭 재단에서 운영하는 여자중고등학교의 교사자리 추천이 들어왔다. 나는 가톨릭 재단이라는 것이 마음에 들어 시골이지만 면접을 보러갔고 채용됐다. 그 학교에서 근무하면서 동료 수녀 선생님과 많은 접촉을 가지면서 성경을 공부하고 영세를 받아 ‘아네스’란 세례명도 얻게 되었다. 그러나 시골 생활이 힘들어 1년 뒤 도시 학교로 옮겨 집으로 돌아온 후 성당에 나가지 않게 되었다.
결혼을 하고 주변의 좋은 이웃 중에서 가톨릭 신자인 분들을 많이 만났지만 종교 생활에 신심이 나지 않았고 영세를 받았다는 사실이 항상 부담으로 남아 있었다.
종교도 자신에게 인연이 있어야 신심이 난다는 것을 불교를 접하면서 깨닫게 되었다. 누가 권하지도 않았는데 우연히 만난 불법을 통하여 기도도 할 줄 알게 되고 또 기도 성취의 기쁨도 얻을 수 있었다.
내게 우연히 불연이 닿게 된 것은 10년 전 가을이었다. 문득문득 불교공부가 하고 싶던 차에 갑자기 인연이 닿게 된 것이다. 그날 나는 평소에도 몸이 약한 둘째 아이가 환절기 감기에 걸려서 수지뜸을 해줄 생각으로 뜸을 사러 나온 참이었다. 수지침 지회가 있는 빌딩에 들어가, 아무 생각 없이 엘리베이터 층번호를 눌렀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내가 내린 복도는 그 동안 여러 번 방문해왔던, 수지침 지회가 있는 익숙한 3층 복도가 아니었다. 그러나 돌아나가려던 나의 눈길은 벽에 붙어있는 한 장의 포스터에 머물렀다.
‘불교교리 강좌’
시기를 확인해보니 시작한 지 1주일 남짓 지난 터였다. 이렇게 해서 나와 불법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그 당시 교육관계 사단법인에서 나오는 월간지 연구원으로 활동하면서 오후엔 학생들을 가르치는 부업을 하고 있던 나에게 1주일에 세번이라는 시간은 상당한 부담이었지만 포교당의 문을 두드렸다. 내가 참석한 첫날의 강사는 40세가 넘어 불교학 박사 학위에 도전하고 있는 보살이었다. 내용은 무슨 말인지 하나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고 그 당시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여자 분이 박사 학위 공부를 하고 있다는 사실만 경이로웠다. 나누어준 인쇄물을 살펴보아도 전혀 이해되지 않는 내용들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보살사상에 대한 본인의 박사학위 논문 강의였다. 이 분이 지금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에 재직하고 계시는 이봉순 교수님이다. 전업주부로 있다 40세가 넘어 박사 학위에 도전할 수 있다는 데 더욱 불교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생겼다.
연구실에 나가야 하는 날만 빼고 불교교리 강좌가 있는 날은 항상 포교당으로 갔다. 어떤 알 수 없는 힘이 나의 발걸음을 자꾸만 포교당으로 향하게 했다. 스님의 강의로 다가오는 새로운 불법의 세계는 법열을 가슴으로 느끼게 했다.
하나 둘 씩 알아가면서 자연스럽게 내 속에는 신심이 싹텄다. 스님의 염불 소리가 무척 듣기 좋아지면서 대중들과 함께하는 지심귀명례 예불문이 가슴 속에 스며들었다. 저녁마다 하는 <반야심경> 사경 기도 덕택에 자연스럽게 <반야심경>을 외우고 스스로 불자가 되어가는 것을 느꼈다. 불교교리 공부를 하는 동안 일요법회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그 해에는 큰애가 서울과학 고등학교 입시를 앞두고 있었고 남편이 직장 생활을 하면서 관세사 자격시험에 두 번째 도전하던 해였다. 나는 법당에서 기도할 때나 매일 잠자러 가기 전에 <반야심경> 사경기도를 하면서 아들의 과학고 입시 성취를 간절히 간구했다. 그 기도 성취를 큰 애 입시 날 맛보았다.
입시 당일 날 큰애를 입시장에 데려다주니 정문에서 만난 친분 있는 학부모들이 시험 끝날 때까지 근처에서 기다리자고 했다. 나는 볼 일이 있다고 하면서 곧장 집으로 돌아오니 1교시 시험 시간이 조금 지나 있었다. 시험 시간표를 앞에 두고 <지장경>을 읽으면서 기도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머리가 맑지 못하고 자꾸만 잠이 쏟아져 깜빡깜빡 정신이 흐릿해졌다. 이러면 안 된다고 자신을 다그치면서 <지장경>을 소리내어 읽었지만 그것도 잠시, 어느새 정신이 혼미해져 있었다. 목소리의 힘이 없어지면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하며 일념으로 독경을 했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갑자기 머릿속에 번쩍 빛이 드는 듯 맑아졌다. 앞에 놓인 시계를 보니 1교시 끝나기 10분 전이었다. 마음이 탁 놓이며 저절로 환희심이 차올랐다. 어째서인지 몰라도 분명, 큰애가 여지껏 공부해온대로 실수없이 끝마무리를 잘 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 때부터는 맑은 정신으로 <지장경>을 읽으면서 마음속으로 큰애를 떠올리며 기도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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