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음보살님께 지극한 정성을 다한 간절한 마음으로 ‘우리 외손자 목숨을 구해 주십사’고 합장 정근 기원하기로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슬픔과 괴로움에 잠겨 있는 다른 중환자 보호자들에게도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야 하겠다는 생각에서 관음 염송 기도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는 제가 정년퇴직하기 이전이어서 낮 근무시간에는 빠져 나오기 힘들었기에 저녁 시간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튿날 퇴근 시간에 병원에 들러 중환자실 앞에 대기하고 있는 여러 보호자들에게 “불교를 믿는 분은 문 앞으로 오시라”고 해서 관세음보살의 위신력과 영험을 담은 <법화경> 관세음보살 보문품의 법문을 읽어 드렸습니다.
“만약 이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지니는 이는 가령 큰불 속에 들어가도 불이 능히 태우지 못하리니 이 보살의 위신력 때문이니라. 만약 큰 물에 표류하는 바가 되더라도 그 이름을 부르면 곧 얕은 곳에 닿게 되리라. 만약 백천만억 중생이 있어서 금·은·유리·자거·마노·산호·호박·진주 등의 보배를 구하기 위해 큰 바다에 들어갔을 때, 폭풍이 그 배에 불어 닥쳐 나찰귀국(羅刹鬼國)에 표류해 닿게 되더라도 그 가운데 만일 한 사람이라도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부르면 모든 사람들이 다 나찰의 난을 벗어나게 되리니 이러한 인연으로 이름을 관세음이라 하느니라.
만약 또 어떤 사람이 피해를 당했을 때에 관세음보살 이름을 부르면 그들이 가진 칼과 몽둥이가 곧 조각조각 부서져서 벗어날 수 있게 되며, 만약 삼천국토에 가득한 야차와 나찰이 와서 사람을 괴롭히려 해도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으면 이 모든 악귀가 오히려 악한 눈으로 보지도 못하거든 하물며 다시 해치려 하겠느냐. 가령 또 어떤 사람이 죄가 있거나 죄가 없거나 고랑을 채우고 칼을 씌우고 쇠줄이 그 몸을 결박하였을지라도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부르면 다 끊어지고 부서져서 곧 벗어나게 되리라.
이 보살은 능히 중생들의 두려움을 없애 주나니 그대들이 만약 명호를 부르면 이 원적에서 마땅히 벗어나게 되리라”
차근차근 읽은 후 관세음보살의 명호만 불러도 그 영험과 공덕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 간절한 마음으로 중환자들이 하루바삐 회복되기를 관세음보살님께 기원하며 염불을 드립시다”라고 제의해 만장일치 찬성을 얻어 <반야심경> 독송과 관음정근 염불을 하기로 했습니다. 준비해간 <법요집>을 나눠 주고 제가 선창하면 뒤따라 염송하도록 시범을 보였습니다. 매일 아침, 낮, 저녁에 세 번 씩 하자고 제의했더니, 사위와 딸애는 매일 아침 저녁에 교대로 병원 가까이 있는 봉원사에 가서 108배 기도를 올리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절에도 가고 중환자식 앞에서도 하고 해서 관세음보살님께 철석같은 굳은 마음으로 매달리자”고 했더니 동의해 줬습니다.
아침과 낮은 제 사위와 딸이 중심이 되어 관음 염송 기도를 올리고 저녁에는 제가 맡았습니다.
이렇게 염불기도를 계속한 지 1주일 쯤 되었을 때 외손자 담당의사가 “이상하다”면서 일반 입원실로 아기를 옮기는 것이었습니다. 사위와 딸, 우리집 가족 모두 너무 기뻐 어찌 할 바를 몰랐습니다. 의사선생님께서 말하기를 “중환자실로 옮기기 전에 최선을 다 했으니 도저히 치유가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하고 포기한 상태였는데 회복한 것이 기적”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회복의 원인은 의술이 아니고 하나님의 보살핌때문일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한 것은 세브란스 병원은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 설립된 병원이고, 그곳에 근무하는 의사선생님들도 거의 기독교인이므로 ‘하나님의 은총’이라고 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우리 가족 모두는 부처님의 가르침인 인과응보(因果應報)로 관세음보살님께 올린 염불 기도의 과보임을 지금까지의 과정에서 믿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일반 병실로 옮긴 뒤 손자는 점차 호전되고 열흘 만에 완전히 회복되어 퇴원했습니다. ‘거의 살아날 가망이 없을 것이라’고 여겼던 외손자가 완쾌되어 현재까지 건강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그 동안 감기 몸살 정도의 잔병은 앓았으나 그래도 잘 자라 현재 중학교 2학년이 되어 공부를 잘 하며, 학급 반장 일도 맡아보고 특별활동으로 피아노 레슨과 영어 회화 등도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발달된 현대 의학으로 소생시킬 수 없다고 포기했던 제 외손자가 이렇게 건강하게 되고 학교 생활도 열심히 하게 된 것은, 온 가족이 관세음 보살님께 지극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드린 관음 기도의 가피력에 힘입지 않고서는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뿐만 아니라 뒤에 딸애로부터 들은 이야기지만 그 때 중환자실 앞에서 관음정근을 같이 한 중환자의 보호자 한 분을 종로 거리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뇌진탕으로 입원했던 자기 남편도 소생하여 건강하다는 말씀을 하면서 그 동안의 소식을 서로 나누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렇듯 21세기의 과학 만능시대라 할 지라도 인간의 지혜로는 풀 수 없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한의 신비함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모두 대우주의 진리를 깨닫는 가르침인 불교를 신해행증(信解行證)합시다.
나무 관세음보살 마하살.
신행수기 잘 쓰려면 ⑦
묘사와 서사 사물의 현상·변화과정 등 정확히 전달되게
1. 묘사란
묘사는 어떤 대상적 사물의 현상을 보고 듣고 관찰하여 그 인상을 감각적으로 그려내는 서술의 한 양식이다. 실제의 상황이나 실제의 경치를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맛보게 하기 위한 표현이다.
우리는 누구나 슬프든 즐겁든 의식이 ‘어떻게’든 반응하지 않고는 그 진미(眞味)나 진경(眞境)을 표현해 내기 어렵다. 그 ‘어떻게’를 알려면 감각해야 한다.
①눈이 유리창에 내리고 있다. ②싸락눈이 유리창에 부딪치고 있다. ③싸락눈이 유리창에 싸라기처럼 싸락싸락 부딪치면서 나뒹굴고 곤두박질을 치다가는 또르르 또르르 굴러서 토방 위에 새하얀 떡가루처럼 소복이 쌓이고 있다.
위와 같이 묘사의 정도는 ①문보다는 ②문이, ②문보다는 ③문이 더 구체적이고 감각적이다. ③문에서는 세부적인 인식과 묘사가 구체적으로 형상화되어 실제로 그 대상을 보는 듯 그려진다.
유의할 점은 ①객관적일 것. 냉정한 관찰을 거칠 것. ②정연할 것. 시간과 공간상의 순서를 지킬 것. ③대상의 요점과 특색을 가려 거두는 반면 불필요한 것은 버려야 한다.
2. 서사(敍事)란
서사는 사건의 진행, 사물의 변화 과정 등을 대상으로 한다. 이들은 모두 무엇인가의 ‘움직임’이다. 그런데 움직임은 반드시 ‘시간’의 추이에 따르게 마련이다. 서사는 단순히 시간의 추이에 따라 어떤 움직임을 그려 보는 데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그 움직임의 무언가 의미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면 안 된다. 따라서 ‘움직임’과 ‘시간’과 ‘의미’는 서사를 구성하는 기초적인 요소가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맹난자(수필가, ‘에세이문학’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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