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70. 4.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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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행수기-보현행원으로 불국이루리 <상>이경숙 (성남시 수정구)
얼마 전에 당숙부가 돌아가셔서 장지에 다녀왔다. 작년 가을에 쓰러지시고 거동이 불편하셔서 자손들의 보살핌을 받아왔는데 그만 세상 인연이 다 됐는지 이 세상을 하직하셨다.
장지는 당숙부가 한 평생을 몸담고 사셨던 집에서 가까운 위치에 있는 뒷산이었다. 십수년 전 가을, 햇살이 맑고 샛노란 은행잎이 꽃잎처럼 깔린 길을 걸어갔던 때가 떠올랐다. 구십이 넘게까지 장수하셨던 할머니가 타신 꽃상여의 뒤를 따라가며 할머니는 복이 많으시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호상이라고 별로 울지도 않았다. 그러나 조선의 여인이었던 할머니, 여름에도 솜버선을 신고 흐트러짐이 없었던 할머니의 자태를 볼 수 없었던 것이 섭섭하고 그리웠다. 그 후 은행잎을 보면 할머니의 꽃상여가 떠오르곤 했다.
돌아가신 당숙부는 부지런하셔서 마을 일을 내일처럼 돌보셨다고 동네 어른들이 말씀하셨다. 하관을 할 때에는 가족들이 서럽게 울음을 터뜨렸다. 나도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왕생극락하시고 아미타 부처님 뵙고 큰 법 깨치어 찬란한 빛으로 돌아오소서”라고 명복을 빌었다.
나는 요즘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기를 두드리고 광덕 스님의 행사 법어 녹취록을 들으며 교정하고 있다. 녹취할 때 빠트린 부분이나 잘못 전달된 부분을 찾아서 수정하고 오자를 고치며 문장을 다듬고 있다.
내가 무슨 자격이 있다거나 실력이 있어서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5년 전에 입적하신 광덕 스님의 말씀을 책으로 만드는데 자원봉사자가 필요하다고 했기에 지원해서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스님의 은혜에 보답하고 부처님의 말씀을 듣는 기회를 갖고자 지원하고 또 시작했는데 봉사라기보다는 오히려 얻는 것이 더 크기 때문에 감사한 마음으로 작업하고 있다.
지금 하고 있는 부분은 바로 부처님의 출가재일 법어다. 부처님께서는 중생의 생로병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출가하고 고행을 하셨다. 그리고 마침내 깨달음을 얻고 중생을 구제하시게 됐다. 그 대목을 광덕 스님께서는 그 때의 광경이 떠오르게끔 실감나게 말씀하시고 계신다.
이렇게 녹취록을 교정하고 있다보니 광덕 스님을 뵙게 됐을 때가 생각난다.
처음 만났을 때는 이렇게 각별한 인연이 될 줄을 몰랐다. 점안식 법회에서 법문하시는 것을 듣게 됐는데 한 말씀 한 말씀에 힘이 실려 있었고 정신이 번쩍 들게 법문을 하시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한동안 잊고 지냈다. 절에 가면 마음이 편해지고 정신이 맑아짐을 느껴서 가끔 산사를 찾게 됐다.
그 후 어느 가을 어스름한 저녁 무렵이었다. 길가의 낙엽들은 세찬 바람에 이리 밀리고 저리 쏠리면서 거리에 나뒹굴고 있었다. 여름에는 무성한 잎을 자랑하고 그늘을 만들어주던 나무들은 볼품없이 쓸쓸해 보였다. 그 풍경은 나 자신을 보는 듯했다. 나도 언젠가는 낙엽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차츰 피붙이들도 나를 잊을 것이고 내 존재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살아온 날 보다는 앞으로 살아갈 날이 훨씬 줄어든 이 시점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지금 이 나이가 되도록 나는 무엇을 했단 말인가. 딴에는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했는데 실은 아무것도 한 일이 없었다.
내 삶의 모습을 돌아보았다. 이대로 주어진 삶에만 매달리기에는 시간이 아깝고 세월이 짧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 이제부터 나를 찾자. 이제 남은 세월은 나를 위해서 일부를 할애하자.
그런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찾아야 하며 무엇을 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어느 날 일간 신문을 보던 중 눈에 띄는 기사가 있었다. ‘불교교양대학’ 수강생을 모집하고 있었다. 강사진도 훌륭한 분들이었다. 신청을 하고 설레임과 기대로 개강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일주일에 한번씩 <반야심경>을 봉독하고 교수님이나 스님 말씀을 귀담아 들었다. 수업이 끝나고 발우 공양이 있었다. 김치 한 잎, 밥알 하나까지도 남기지 않고 알뜰하게 먹어야 하고 그릇까지 헹궈서 마시는 절집에서의 예절을 그대로 재현하는 시간이었다.
오늘날 환경을 훼손한다고 호들갑 떨고 자연을 보존하자고 외치면서도 역행하는 행동을 볼 때 절집에서의 수행방법은 모담답안지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3개월이 다 끝나갈 무렵 어떤 방해꾼(?)으로 인해 수료를 못하고 말았다. 그 사찰과의 인연은 거기서 끝나버렸다.
그 후 집안에는 크고 작은 일이 생기고 이러한 문제들은 나를 압박했다.

신행수기 잘 쓰려면 ⑧

퇴고 글 전체 살피고 문단단위로 고쳐나가야

퇴고에 대하여
퇴고란 글쓰기의 과정 중 마지막 단계이다. 집필이 아무리 만족스럽게 이루어져도 나중에 다시 읽어 보면 고칠 데가 눈에 띄게 마련이다.
몇 년 전, 필자가 발자크의 집에서 그의 책상에 있는 자필 원고 엽서를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본문보다 퇴고한 내용이 훨씬 더 많았기 때문이다. 퇴고는 흉이 아니다. 하면 할수록 글이 다져지게 되니까. 그렇다면 퇴고는 어떻게 할 것인가? 물론 퇴고의 순서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선 글 전체를 살피고 그 다음에 문단 단위로 고쳐 나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글 전체를 살필 때는 다음 사항에 유의한다.
△주제를 구현하는 데 불완전하거나 결여된 내용은 없는가 △주제에 어긋나거나 무관한 내용은 없는가 △글의 각 부분(문단)의 이음새는 유연한가.
△냉정을 잃어 갑자기 흥분하거나 공연한 감상에 빠진 데는 없는가 △스스로 확신이 서지 않는 미심쩍은 내용은 없는가 △제 자랑(가족 포함)으로 받아들여질 곳은 없는가.
문단 단위로 퇴고를 할 때는 다음 사항에 유의한다.
△소주제를 구현하는 데 불완전하거나 결여된 내용은 없는가 △소주제에 어긋나거나 무관한 내용은 없는가 △문장들의 이음새는 유연한가 △문장은 정확하고 분명한가 △단어는 정확하고 알맞은가 △심상(심상이 있는 경우)은 선명하고 표현은 참신한가 △수식어는 정확한가 △오자나 탈자는 없는가 △능동피동의 혼란은 없는가 △저속한 내용은 없는가 △내용의 모방은 없는가 △시제(時制)의 혼란은 없는가 △조사나 접속사의 사용은 정확한가 △띄어쓰기는 맞는가. 맹난자(수필가, ‘에세이문학’ 발행인)
2004-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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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감으로 체험하는 꽃 작품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