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70. 4.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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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신행수기 입상작특별상(천태종 총무원장상)-되찾은 희망 (하)/변숙이 (대구시 북구 관음동)
모든 의심 끊고 기도에 열중
마음 안정되니 모든일 ‘환희’

기도를 마치고 돌아온 남편에게 3일 만에 여기저기 직장에서 들어오라고 연락이 왔다. 그 후 남편은 절에도 잘 나가고 불심을 키우며 바르게 잘 살고 있다.
요즘은 불법에 귀의하게 된 것을 남편이 더 고마워하고 있다. 그 후부터 나는 포교에 자신감을 갖고 부처님 앞에 원을 세우고 1년에 한 명 이상에게 꼭 포교하고 있다.
신앙생활도 무르익어 어언 10년이 될 즈음 보름이 가까워지면 왠지 마음이 설레고 보름달이 그렇게 곱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달빛이 아쉬워 밤을 하얗게 새운 적도 있다. 아파트 베란다에 나가 쪼그리고 앉아 관세음보살을 부르다가 또 달을 쳐다보고 있노라면 그 때 그 스님, 무원 스님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소낙비가 올 때면 차를 몰고 무작정 달리고 싶어지기도 했다. 그 때도 그 스님이 또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용기 없는 바보처럼. 그래도 그 스님 찾아가서 한 마디 말 해 본적도 없고 찾아가 인사 한 번 한 적 없이 그저 먼발치에서 ‘고맙습니다’라고 뒷모습에만 대고 합장하곤 했다. 둥근달이 뜨면 뵙고 싶고 소낙비가 와도 뵙고 싶어, 여름휴가 때 남편을 졸라 구인사에 갔다. 나는 대조사님 앞에 합장하고 “이 연유가 무엇입니까?”라고 하소연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이 중생 불쌍히 여기시고 거두어 주십시오. 마음 같아서는 무원 스님 장삼 한 벌 해드리고 싶고 그때 고마웠다는 인사도 드리고 싶지만 용기 없는 이 중생 한 마디 말도 못하는 바보입니다. 무원 스님이 저를 부를 때 7대 조사님의 원력으로 불렀겠지요. 그러니 그 스님 옷 대신 대조사님의 탄신일 날 꽃 시주 하시라고 공양금을 올리겠사오니 그 스님을 귀하게 봐 주시고 멋지고 멋진 최고의 장삼을 대조사님께서 입혀 주십시오.”
간절히 기도하는데 눈물이 비 오듯 흘러 내렸다. 기도를 마치고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천상의 세계를 보았다. 그 세계는 이루 말로도 글로도 표현 할 수 없는 세상이었다. 내가 보고 느끼던 그 순간이 얼마나 행복하고 좋은지 이 세상 부귀영화가 아무리 좋아도 그 순간하고 바꾸지 않으리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깜짝 놀라 일어나보니 누운 지 불과 5분이었다. 꿈인지 생신지 안타까워 몸부림쳤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러나 그 기억은 그 누구도 가져갈 수 없도록 내 마음에 깊이깊이 뿌리박혔다.
열심히 관음정진하며 부처님 정법대로 살다 가도록 노력하리라.
작은 것부터 실천 수행하여 다음 생엔 꼭 천상세계에 태어나고 싶다. 기도를 통해서 나의 전생도 보았고 일상생활에 약간의 고통도 있었지만 기도로 다 해결되고 항상 평범하게 지금까지 잘 살아왔다.
그 다음해 여름이 다시 왔다. 갑자기 남편이 베트남에 1년 동안 연수를 떠났다. 마음도 허전하고 하안거 주간이라 구인사로 3일 기도를 갔다. 4층 기도실에서 기도를 하는데 눈물이 나서 멈춰지질 않았다.
기도를 할 수가 없어 바람 쐬려고 밖으로 나왔다. 그 때 약속이나 한 듯 저 밑에서 무원 스님이 또 올라 오셨다.
스님은 나를 보더니 “보살님, 나한테 뭐 할 말 있어요?”라고 했다.
눈물을 줄줄 흘린 채 말을 할 수가 없어 고개만 끄덕였다. “내 방 몇 호실로 오세요”하고 지나갔는데 우느라고 방 호수를 잊어 버렸다. 식당 마당 마루에 앉아 눈물을 닦고 진정을 취해서 무작정 내려가 보았다. 그런데 너무도 신기하게 마중을 나와도 그렇게 정확하게 만날 수 없었다.
스님께서는 나를 보더니 첫 마디가 “보살님, 남편은 뭐하는 사람입니까? 슬하에 자녀는 몇을 두었습니까?”하고 묻더니만 “보살님이 나한테 묻고 싶은 말 있으면 물어보세요”라고 했다. 그 때 내가 “스님, 그 때 스님이 그 많은 사람 중에 왜 나를 불렀을까, 그게 생활하면서 늘 궁금합니다”라고 하니 “왜 불렀을까 생각하지 말고 열심히 기도해요. 다 인연이 있었기에….” 하는 짧은 답변을 한 마디 했다.
“예”하고 더 이상 아무 말도 못하고 기도실로 향했다. 그 후부터 생각도 의문도 다 묻어둔 채 모두 하심하는 마음으로 기도했다.
그러자 스님이 보고 싶은 마음도 점점 사라지고 구인사에 가도 그 스님을 마주치는 횟수도 차츰차츰 덜해졌다.
그러나 보름달빛은 여전히 고와 잠 못 이룰 때가 있다. 그 때는 이런저런 마음을 다 치우고 용맹정진 한다.
그 해 스님을 만난 몇 달 후 내가 다니던 사찰에서 내게 신도회 간부직을 맡아 달라는 부탁이 들어왔다. 부녀회장 3년을 마치고 다음해엔 재무부장을 하고, 시골이라 재정이 넉넉하지 못한 그 사찰을 위해 경리일을 4년간 무료봉사했다. 그 때 무원 스님은 구인사에서 사회부장을 맡고 계셨다. 주지스님의 배려로 간부임기를 마치면서 부산에 있는 모 호텔에서 열린 2박3일 간부파티에 참석했다. 너무너무 재미있고 감명 깊었다. 간부파티에는 무원스님이 사회를 보고 대덕 스님들과 전국 사찰 신도회장님들이 참석해 계셨다. 내가 감히 그 자리에 낄 수도 없었는데….
모두가 한 마음이 된 그 자리에서 무원 스님과 함께 한 그 시간을 영원히 잊을 수가 없다. 다 같이 손뼉치고 노래 부르던 화합된 그 자리가 감명 깊었다.
열차를 타고 돌아오며 난 생각했다. 부처님은 나에게 이렇게 행복하고 영광스러운 추억의 한 페이지를 만들어 주셨는데 나는 과연 신도님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영광을 조금이나마 회향하고 싶었다.
크리스마스 캐롤이 울려 퍼지고 자비의 종소리가 퍼질 때 나도 한 해를 마무리하며 조금이나마 보람된 일을 해야 되지 싶어 남편한테 뜻을 전했더니 돈을 주며 격려했다. 쌀도 사고 두툼한 조끼며 내의 등을 사서 우리 사찰 신도 중 어려운 보살 집에 찾아가서 선물을 전하며 위로를 했더니 너무너무 고마워했다. 받은 것보다 나누는 기쁨이 그렇게 크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실천수행을 통해 베푸는 기쁨이 어떤 것인가를 맛볼 때 신앙생활 중 그 어느 것보다도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큰 시주도 해보고, 간부 생활도 하고, 절소임도 맡아보고, 불교 교리도 배우고, 스님 법문도 듣는 등 무엇이나 해봤지만 어려운 이웃이나 장애인, 소외받는 노인들을 돕는 것이 나는 내 맘에 제일로 와 닿고 또 제일 보람차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름대로 꿈과 희망을 갖고 올해엔 대학교 사회복지과에 지원했다.
앞으로는 전문적인 지식도 쌓고 사회에 봉사하며 살 수 있도록 꼭 합격해서 내 꿈을 이루었으면 좋겠다. (끝)

신행수기 일년내내 받습니다
삶을 살아가면서 가슴속에만 꼭꼭 담아두었던 감동깊은 신행체험들을 진솔하게 적어 보내주십시오. 연중 접수한 신행수기 가운데 우수작은 소정의 고료를 드리고 신문에 연재하며, 연말에 최종 심사를 거쳐 시상합니다.

● 주제: 신행 및 수행 체험, 불심으로 고난을 이겨낸 이야기
● 분량: 200자 원고지 30매 안팎(A4용지 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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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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