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70. 4.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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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신행수기 입상작 특별상(천태종 총무원장상)-되찾은 희망 (상)/변숙이 (대구시 북구 관음동)
악몽 떨치려 구인사서 기도, 계속 잠만 쏟아져 포기할까

내 나이 스물여덟 되던 어느 여름날이었다. 칠월칠석을 앞두고 친정엄마의 권유로 단양 구인사라는 곳을 찾아 갔다.
그 때는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으로, 밤마다 악몽에 시달려 고생하고 그 악몽을 꾸고 나면 곧 생활에 연관돼 ‘또 내일은 무슨 일이 일어날까?’ 하는 고민과 두려움으로 지장이 참 많을 때였다.
나는 9개월 된 아들을 친정에 맡기고 배를 타고 강을 건너 구인사를 찾아 갔다.
4박5일 기도표를 끊어 법당에 참배하고 대조사님 산소에 다녀오고 나니 노곤하고 기운이 없어, 지금은 구름다리 밑의 장작이 가득 쌓여 있는 비석자리 옆에서 2박3일 동안 밥도 먹는 둥 마는 둥하고 계속 잠만 잤다. 깨어나면 후회하고 또 잠에 취해 자고 그러던 중 방송이 나오기 시작했다.
4박5일 기도를 마치고 집에 가는 사람만 종정 큰 스님 친견을 위해 삼보당으로 모이라는 방송이었다. 난 답답한 심정에 친견을 하고 집에 가야겠다는 결심으로 아침부터 줄을 서서 삼보당에 들어갔다.
큰스님을 친견하니 “기도 열심히 해”라는 그 간단한 말씀 한 마디뿐. 다른 사람들은 처방도 많더라만….
기대에 비해 너무 간단히만 말씀하셔서 혼자서 실망을 하다가 다 치우고 집에 가려고 했다. 남편과 자식 걱정에 마음이 불안해지고 괜히 왔다는 생각에 후회스럽고 답답하기까지 했다.
친견을 마친 다른 신도님들과 함께 줄지어 삼보당을 나오는데 갑자기 비구스님이 “보살님?”하며 큰 소리로 불렀다. 큰 스님 방 앞에 있는 작은 쪽문을 지키던 스님이었다.
사람들이 수근 거리며 뒤돌아보았다. 자꾸만 외치는 그 소리에 나도 뒤돌아보았다. 그 스님의 눈빛이 곧 나를 바라보며 부르는 것 같았다. 내가 내 가슴에 손을 얹으며 “저 말입니까?”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오늘 친견 날짜가 아닌데 하는 죄책감에….
북새통 속을 빠져나가 스님 앞에 다가서니 스님께서 “보살님! 보살님 집에 가는 날짜가 언제입니까?”라고 물었다.
“예? 집에 갈 날짜는 며칠 남았는데 오자마자 계속 잠만 자고 기도도 안 되고 해서 그만 집에 가려고 친견을 받고 나왔습니다” 했더니만 스님은 하늘을 쳐다보시더니 부드러운 목소리로 “보살님! 보살님은 잠을 자도 기도 열심히 하는 사람보다 더 공부가 잘 되고 있으니 꼭 4박5일 날짜를 채우고 가십시오”라고 하셨다.
“예”하고 돌아서는 순간 답답한 마음이 눈 녹듯이 가라앉으면서 머릿속에는 의문이 남기 시작했다. 잠만 잤는데 공부가 잘 되고 있다니….
저녁 공양을 하고 5층 법당 뒤에 가서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기도가 얼마나 잘 되는지 내 기도소리에 내가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기도했다. 몇 시간이 흘러갔을 즈음 몸이 공중으로 붕 뜨는 느낌과 동시에 마음은 고요히 착 가라 앉으면서 입에선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또 부르는데 머릿속으로 지금까지 살아온 모습들이 마치 TV를 보듯 한순간 스쳐 지나갔다.
내 육체가 다 없어진 것 같은 느낌에 손으로 넓적다리를 꼬집어보았다. 내가 제 정신인 것이 맞는데 왜 이럴까? 깜짝 놀라 눈을 떴다. 졸은 것도 아니고 정신은 초롱초롱 맑은데….
멀리서 들려오는 비구니스님들의 기도 소리를 쫓아 열심히 기도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부처님이 더 없이 보배로운 생활의 지침서를 그 때 주신 것 같다.
그 날 저녁 나는 내게 세 가지 보배가 있음을 깨달았다.
그 중 하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지어온 선업이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를 따라 조계종 절에 다녔다. 고등학교 다닐 때였다. 절 법당 부처님 앞에는 법사님 부인만 꽃 공양을 올리곤 했는데 어느 날 법사님께서 나를 보고 “그믐날이 되거든 국화꽃을 사와서 부처님 전에 공양 올리거라”며 몇 가지 주의사항을 알려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법사님은 영이 맑으신지 신기가 많으신지 참으로 까다로우셨다. 그때부터 난 용돈을 아끼고 정성들여 결혼할 때까지 꽃 공양을 올리라는 법사님 말씀대로 약8년 동안 꽃 공양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구인사에 가서 기도하니 제일 먼저 그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눈앞의 사찰 도량이 부채춤 추듯이 감싸고 그 안에서 스님들이 줄지어 목탁을 치며 도는 모습과 겹겹이 쌓인 온 산이 마치 국화꽃처럼 보이면서 갑자기 ‘내가 지금까지 부처님 전에 올린 그 꽃이 다 모여 저렇게 많구나. 그러니 공든 탑은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너무나도 순간이고 찰나였다.
두 번째로는 인연법의 보배를 주셨고 세 번째로는 조상님 천도와 효에 대한 보배를 주셨다.
기도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차창 밖을 내다보고 있노라니 “기도 열심히 해” 하시던 큰스님 말씀이 자꾸 맴돌았다.
‘아! 하면 되는구나, 열심히 해 봐야지.’
집에 돌아와 달력에 동그라미를 치면서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남편의 불평은 점점 커졌다. 생각 끝에 남편을 포교하러 구인사 3일 기도를 갔다.
“부처님! 남편을 불제자가 되게 해 주신다면 이 목숨 다할 때까지 영원히 변치 않는 불제자가 되겠습니다”라는 원을 세우고 부처님 앞에 빌고 또 빌었다.
5층 법당에서 한동안 눈물을 흘리다가 관음전을 거쳐 삼보당으로 향하는데 갑자기 ‘아! 몇 년 전 저 쪽문을 지키던 스님, 그 스님이 나를 그 때 불렀었지. 그 스님이 누굴까?’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우물가엔 비구니스님들이 생각을 씻고 있었다. 다가가서 여쭤보았다.
“스님! 5년 전 쯤 저 쪽문 지키던 스님이 누구십니까?”하니 수군수군 의논 하시더니 “무원 스님”이라 하셨다.
기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그 날 아침공양을 하고 내려오는데 저 앞에 스님 한 분이 뒷짐을 지고 올라오고 있었다.
자꾸만 ‘저 스님이 그 스님이 아닐까’라는 예감이 들어 어떤 노 보살님께 물어보았다. 무원 스님이라 했다. 너무도 신기해서 다른 처사님을 붙잡고 또 물어보았다. 역시나 무원 스님이셨다. 그 후 구인사의 모든 행사에 참석할 때나 기도하러 갈 때면 꼭 그 스님을 보게 되었다. 그 때마다 스님 뒷모습을 보며 ‘스님, 저 왔어요. 스님, 고맙습니다’라며 마음속으로 꼭 인사를 드렸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 회사가 갑자기 부도가 나서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다. 남편에게 구인사 가서 4박5일 기도하고 오라고 사정했다. 불교에 익숙하지 않은 남편은 무슨 소리냐며 펄쩍 뛰었다. 설득에 설득을 거듭하다가 제의했다. 직장이 구해지지 않으면 당신 뜻대로 절에 다니지 않겠다고 큰 소리쳤다. 그 말 책임지느냐고 다그치더니 각서 쓰라고 했다.
남편은 구인사로 떠나고 난 집에서 부처님께 기도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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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제: 신행 및 수행 체험, 불심으로 고난을 이겨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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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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