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70. 4.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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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탁의 인연에 대한 기억 <하> 한인숙 (원주시 가현동)
난 그 속에 홀로 존재했다. 무용수가 공연끝자락에 혼자 서 있는 기분이 이런 것이었을까. 그러나 내게 한 사람, 나 자신에게 배반당했다는 그 분열된 생각 속에서 나를 지켜준 이, 어머니가 있었다. 오직 어머니만이 내가 그곳에 혼자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를 현실로 끌어내려 줬으나, 받아들일 수 없었던 현실 때문에 마음이 더 아팠다. 현실이란 그런 것이었다. 내가 갈 수 있는 국립대 중에 나를 받아줄만한 4년제대가 없다는 것, 내가 눈 여겨 봐둔 세상이 나를 밀어내는 상황.
그럼에도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언젠가 받아놓았던 상장을 들고 공주대 사범대에 특차를 지원하겠노라 했다. 어이없어 하는 선생님의 시선을 뒤로 하고 원서를 받아들고, 새별열차를 타기 위해 나간 기차역에서 기차표를 받아들었다. 끝내는 갈 수 없었던 기차 시간 앞의 절박함, 그런 불확실함 속에 발길을 돌려 사람들의 시선으로 돌아가야 했던 치욕스러움, 그 새벽이 나의 현실이었다. 아무도 내게 말하지 않았다. 나는 잠시 실수를 했고 그래서 원래의 자리를 잃었지만, 나 자신만 확실히 믿으면 다시 길이 보일 거란 말을 해주지 않았다. 가난을 대신하기 위해 악쓰던 자존심은 애초부터 없었다는 듯이 나를 내려다보는 시선 속에 짓밟힐 뿐이었다.
그렇게 과부의 몸으로 아들하나 딸 여섯을 홀로 키우신 어머니- 헌금이 아까우셔서 그 어떤 신에게도 끝내 의탁하지 않고 홀로 걸어오신 어머니- 밑에서, 다섯째 딸인 나는 이렇게 불교문턱에 서서 문을 두드렸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또 다른 어머니의 말뚝이 되었음을 나 또한 가슴 깊숙이 담아야 했다.

세 번째 기억
“불과 세 시간이었어. 눈을 감고 있는데 내가 태어날 때부터- 난 그때 분명 태어날 때부터의 순간이 지나가기 시작했다고 믿어- 내가 살아온 22년의 결코 짧지 않은 날들이 하루하루 스쳐가는데, 그건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어. 물론, 22년의 시간에서 중요한 것만 지나갔겠지. 근데 난 세 시간 만에 진짜 22년을, 1년 365일이라는 법칙성에 따른 22년을 살아버린, 아니 산 어떤 애를 내려보았던 거야. 그 순간 눈물이 그렇게도 날 수 있는 것일까 싶게끔 많이 울고 ‘아! 이 사람의 인생이 참 가엾구나.’ 싶으면서 심장에서 따뜻한 피가 싹 퍼져 나가는 기분이 들었어. 내가, 내 인생을 보고 있는데 그 순간부터 나는 그저 한 아이의 인생을 보는 듯하고 앉아있는 또 다른 내가 내려다보이는 듯싶었어. 법당이 밝아지는 듯했고, 나에게서 빛이 나는 건 아닐까를 생각했지. 그리고 법당에서 나올 때는 나뭇잎 하나 하나에 연민이, 매달리는 거야.’ ‘가련하구나.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가련하구나.’
나는 사실 이 때의 경험을 얘기하면 말하는 순간 날아가 버릴 듯하여 없었던 일들로 돌변할까봐, 말이라는 게 그렇게 허무해 꼭꼭 가슴 속에 담아두고 있었다. 그러다 얼마 전 내 친한 언니에게 털어놨던 것이다. ‘유체이탈’이란 말을 썼지만 이것만으로 어찌 내 경험을 말할 수 있을까.
얼마 전 여름방학 때 나는 절에 갔다. 대학을 2년 다녔고, 그 기간동안 사랑을 했고 떠나버린 사랑에 아파했고 그렇게 절에 가서 쉬고 싶었다. 난 사실, 사랑은 한낱 인생의 한 부분일 거란 생각을 했었다.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는 것이라는 믿음들- 너무나 확신에 찼던 나에 대한 믿음들- 그러나 나의 사랑이 떠나버리고 나서야 그것이 때로는 인생의 전부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건 또 하나의 세계이고 사랑이 떠난 건, 그 세계의 파괴라는 것을 말이다. 대학을 올 때도 그토록 견디기 힘들었던 건 내가 살아온 세계의 파괴된 현장을 인정하지 못했던 나 자신에게 있었음을. 당시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도망쳐버린 것이다.
알에서 깨어났을 때, 다른 세계가 펼쳐짐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받아들일 수 없었던- 독화살을 맞으면 살아날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어디서 독화살이 날아와 왜 내가 맞아야 했는지에 대해 생각하며- 그렇게 나의 세계는 파괴되고 나는 죽어가고 있었음을 몰랐다. 그리고 그것을 알기까지의 시간이 바로 2년이 지난 지금이다. 도망쳐버린 현실에서 나는 한사람의 가슴속에 내 보금자리를 마련하려 했고 의지하려 했기에 결국에 그 무게에 눌려버릴 집을 지어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피한다고 도망간 그 자리가 무너져 내려앉은 날, 나는 아직 내가 열 아홉 살 이후로 한발자국도 나가지 못했음을 깨달아야 했다.
나는 그제야 내 주위에는 깨져버린 달걀 껍질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나아가기 위해 내 안에 다시 집을 짓기 위해 절에 왔었다. 단절된 공간에서 깨끗이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생각했고 그럴 수 있겠다 싶어 선택한 것이 절이었다.
고3때 만난 스님에게 부탁해 절에 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거기엔 단절이 아닌 제한된 인간관계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얼마 안 되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내 세계는커녕 자꾸만 과거에 가졌던 그 세계를 그리워하게 돼버렸다.
그리고 그러던 어느 날이었던가. 저녁에 법당에 앉아있다 나는 이 경험을 했다. 그리고 나를 세운다는 것이 또 얼마나 헛된 것인가를 보았다 -내가 파괴된 세계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이유는 나 자신에 대한 확신과 믿음들이 깨어지는 걸 인정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 그렇게 나는 내 안의 집을 짓지 않고도 평온을 되찾아 돌아와 사람들 틈에 서 있다. 그리고 그 때의 경험에 대한 미련으로 학교로 돌아와 불교철학사를 공부하고 있다. 지금껏 내 파괴된 세계를 마주할 때마다 의탁했던 그 세계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었다.
그리고 내 경험을 누군가 그건 울고 난 후의 카타르시스라고 말해도 그 때의 느낌을 소중히 안고 살아가려 한다.

“줄탁의 인연”, 줄이란 병아리가 알 속에서 다 자라 세상 바깥으로 나오려고 알 껍질을 쭉쭉 빠는 것을 말하고, 탁이란 어미 닭이 그 순간을 알고 바깥에서 알을 탁탁 쪼는 것을 말한다. 불교에서는 스승과 제자의 인연을 이렇게 설명한다는 어느 시인의 수필에서 읽은 글이 생각난다.
이제 내게 있어 불교와 맺어졌던 그 순간들에 대한 세 가지 기억이 풀려있다. 말할 수 있으면 상처는 낫는 것이란 생각을 한다. (끝)
2004-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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