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70. 4.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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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행수기-줄탁의 인연에 대한 기억 <상>/한인숙 (원주시 가현동)
몰아치는 눈 맞으며 정암사에 도착
눈물 뚝뚝 흘리며 “스님이 되고 싶어요”

한 세계를 깨는 건 언제나 위험하다. 그리고 그 세계가 왜 깨졌는가에 대해 고민하며 세계를 깨치고 나가야 함을 모른다는 것은 더 위험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절은 오대산 북대에 있다. 북대사. 선방인 이곳을 알게 된 것도 고3때 만난 스님의 덕이다. 인적이 없는 적막함도 마음에 들지만, 그 길로 가는 곳곳에 있는 자작나무를 나는 사랑한다. 백석시인은 맑고 정갈한 나무, 갈매나무를 생각하곤 한다고 했는데, 나에게 있어 하얗게 빛나는 나무는 자작나무이다. 북대 오르는 길의 자작나무는 여느 길의 자작나무와는 다르다. 몇 백 년 묵은 것이 많고 여느 것보다 좀 붉다. 황금빛이 돌기도 한다.
세상에 내려오면 마음이 맘 같지 않을 때가 많다. 화를 내기도 하고 울기도 하며 싸우기도 한다. 이렇게 내 마음이 깨어질 때, 난 조용히 빛나던 그 자작나무를 떠올리곤 한다.
몇 백 년 동안 자신을 벗겨내며 키워 가는 자작나무 앞에 서서 나는 또 얼마나 많은 나의 세상을 깨야 하는지를 생각하곤 한다. 그리고 아직 그 자작나무를 모를 때쯤에 깨어진 세상 앞에서 아파했던 나의 기억들을 이제는 풀어야겠다.

첫 번째 기억
아직도 내 기억 속엔 회색 체크무늬 교복치마 위에 단정한 넥타이를 맨 까까머리 여자아이가 거울 앞에 서 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보는 거울인데, 거울 속에는 아직 18살의 내가 언뜻언뜻 보인다.
벌써 4년이 지났음에도 내 머릿속의 일부분은 그곳에서 떠나오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가 바로 불교와의 첫 만남이 아니었을까.
쾌청한 날이었다. 분명 5월의 평일 중 하루였다. 여느 때였다면 학교 교실에 앉아 있어야 할 시간인데 내가 왜 그날 조퇴를 했는지, 집에 돌아와 장농을 열고 겨울옷을 정리하고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지 생각나지 않는다. 겨울옷을 정리하다, 마루로 나왔고 내리쬐는 따스한 봄 햇살 속에서 나는 그저 무심하게 내 머리카락을 저겅저겅 잘라냈을 뿐. 거울 앞에 앉아서 나를 응시하고 있었지만 그 순간에 대한 기억은 가위 놀리는 소리와 한번에 잘리지 않던 한 무더기의 머리카락 밀리는 뭉툭한 감각이 다다. 자른 머리카락을 어쨌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머리를 자르고 미용실에 가서 밀수 있는 데까지 밀었다는 기억 뿐이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나는 까까머리였다.
이때의 기억은 분명치 않다. 머리 자른 상황에 대한 기억은 아무리 꺼내 보아도 이것이 다다. 다만 조금 더 생생히 남아있는 것들은 까까머리가 된 다음의 기억들이다. 당시 그나마 학교에서 우등생이던 내가 저지른 어이없는 일에 사람들의 입이 벌어졌었고, 정학이란 말이 오르내렸다는 것과 말 한마디 없던 어머니께서 누워있던 나의 민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감촉, 친구들의 시선들, 그런 것들뿐이다. 그러나 지금 내가 그 기억들을 끄집어내는 건, 이제 나도 그 때의 나 자신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탓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분명 떠나겠단 마음을 안고 집으로 돌아온 듯하다. 수녀원을 생각한 듯한데, 겨울옷을 정리하면서 떠나려는 마음을 내리누르려고 머릴 잘랐던 것 같다. 5월의 신록 속에서 그렇게 떠나버릴 듯한 마음을 머리카락을 밧줄 삼아 내리눌렀던 것 같다. 그때의 날아오를 것만, 금세 떠나버려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은 마치 ‘대지의 봄이 오는 듯한 알 수 없는 기운들의 충만 상태’였다. 팽팽한.
지나고 나서 생각하건대, 이 때의 까까머리는 의도했던 것이건 아니건 간에 내가 불교라는 진리에 다가서기 위한 첫발이었으리라.

두 번째 기억
휘몰아치는 바람에 몸을 맡기고 휘날리던 눈. 한없이 몰아치던 그 바람. 나는 적멸보궁으로 가는 돌다리 중간에 서서 다리 밑에 서 있는 나무 사이로 떨어지던 눈의 군무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전 스치듯 나온 이 때의 만남에 대해 스님이 젖은 신발만을 기억한다고 했다. 아마도 나는 그때 정암사까지의 진눈깨비 길을 한 시간 남짓 걸었었나 보다.
그리고 수마노 탑에 올랐다. 초등학교 때 딱 한번 와봤던 이곳에 온 건 의지가 아니라 발길이었고 탑에 먼저 오른 것도 발길이었다. 탑 앞에 서서, 함백산 골짜기 골짜기에 하얗게 쌓이는 눈을 보며 ‘죽을 수도 있겠다 지금’이란 생각을 하면서도 왜 내가 행동에 옮기지 못했는지는 모른다.
나는 내려왔고, 적멸보궁 가는 다리 위에서 눈을 보고- 나는 그때 무엇을 보고 있었을까- 섰다가 스님 한분을 만났다. 지나칠 수도 있었건만 나는 스님을 따라 차를 한잔 마시며 불쑥 던진 말이 “스님이 되고 싶습니다”라는 목 메인 말과 떨어지던 눈물 방울방울.
이 때가 열 아홉 살의 겨울이었다. 성적표를 받아들고 며칠 밤을 울며 지새우고 찾아갔던 곳이 정암사였고, 어떤 의도도 없이 갔던 그곳에서 스님 한 분을 만났다. 스님이 되고 싶다는 내 말에 선뜻 내 앞에서 비구니 스님께 전화해서 학생 하나 맡겨도 되겠냐고 묻던 스님을 처음 만났던 시간.
그리곤 전화를 놓고 차 한잔이 식어갈 즈음, “어머니 허락은 받아야 하지 않겠냐”하시던 스님의 말에 “하루만”하고 내려오던 기억, ‘어머니께 말은 하고 와야지, 딱 하루만 더 머물자’하며 산사에서 내려오던 기억이 자리한 시간, 고3의 겨울. 그러나 난 다시 가지 못했다.
열 아홉, 내가 부딪친 절망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굳건했던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의 붕괴였고, 다른 하나는 가난이란 현실이었다.
나는 내가 시험에서 실수하리란 생각을 해 본적이 없다. 수능 시험에서 요행수를 바라지도 않았고, 애들처럼 떨지도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이상하리만치 담담했다. 난 언제나 내 실력만큼의 줏대를 가지고 확신을 세웠으며 나 자신을 믿었다.
그러나 시험이 끝나고 가채점에 들어가서 성적을 미리 짐작했음에도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나는 닥쳐올 날들에 대해 무방비 상태였다. 그리고 성적표를 받아들었던 순간, 현실은 어김없이 다가왔다. 당연하듯 웃음이 흘렀고 시간은 갔으며 나 대신 다른 아이 이름의 원서는 떠나갔다.
인정할 수가 없는데 일주일 밤낮을 내리 우는 나는 정지된 내 시간 속에 갇혀 버렸고 기면 상태에 빠져있는 듯한 날들은 계속됐다. (계속)
2004-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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