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70. 4.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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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행원으로 불국이루리 <하>/이경숙 (성남시 수정구)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아이들 뒷바라지를 제대로 못해주는 것이 가슴아팠다. 그래서일까. 바뀌어버린 환경으로 인해 아이들이 상처받을까봐 염려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막내가 사춘기때 시련을 많이 겪었다. 그 부분을 생각하면 지금도 미안한 생각이 든다.
그러나 아픈 만큼 성숙한다고 했든가. 2년 동안 혹독한 어려움을 겪은 막내는 차츰 제자리를 찾아 자기 갈 길을 가며 성숙해 가고 있다. 밝은 웃음도 찾았고 특유의 익살도 부린다. 다시 부처님을 찾아야 되겠다고 생각하며 여러 사찰을 찾아다니던 중에 불광법회를 찾게 됐다. 보수적이지 않으면서 매주 법회도 보고 공부할 수 있는 절을 찾던 나로서는 너무도 다행스러웠다.
오랜 가뭄 끝에 단 비를 만난 것처럼 할일이 많이 생겼다. 본격적으로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나는 잘 알고 지내던 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
“언니, 나는 절에 다니면서 부처님 공부만 열심히 했으면 좋겠어.”
“그러면 얼마나 좋겠니.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형편이 안돼서 그렇지.”
그 후로 법회에 빠지지 않고 열심히 다녔다. 가능한 절에서의 봉사도 빠지지 않고 동참했다. 불교방송이나 다른 절에서의 법회도 참석하며 신심을 키워갔다. 물론 사(寺)중에서의 교육도 빠지지 않고 동참했다. 이 과정 중에 어려웠던 부처님 말씀에도 눈이 떠지고 귀가 열렸다. 아마 부처님 공부하는 일에 더욱 더 매달리게 된 것은 현실을 잠시라도 잊고 싶은 마음에서 더 열심이었을 것이다.
어려서부터 노력한 성과가 있다는 말을 귀가 아프도록 들어왔다. 학교 다닐 때에도 공부를 열심히 하면 그 성과가 성적표로 나타나고 사회에서도 내가 성의를 보이면 보일수록 결과가 나타나서 상사나 동료들에게 인정받았으며 또 뿌듯한 자부심을 안고 살 수 있었다. 결혼해 남편과 아이들 뒷바라지를 하면서 그들에게 정성을 쏟으니 쏟은 만큼 키도 쑥쑥 자라주었고 남편은 어깨에 힘을 주고 아이들은 정신적으로 눈부시게 성장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나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최선의 노력과 정성을 기울여도 내 뜻에 빗나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열성을 보이고 불교 공부에 매달릴 수 있다는 것은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제일 어려웠고 고약해진 마음을 다스리기도 힘이 들었다. 그 때에는 차분히 앉아서 기도하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차츰 불안정했던 마음도 가라앉으며 공부가 더욱 순일하게 됐다. 향을 사르고 편안한 마음으로 기도할 수가 있었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 출발하고 나로부터 빚어지는 일이었다. 그동안 살아온 내 모습을 조명해 봤다.
어쩌면 그리도 허물이 많았던고. 어쩌면 그리도 교만하고 잘난 척을 많이 했을까. 부모님이나 남편, 동기간, 이웃들, 친구들에게 너무 많은 잘못을 했고 섭섭하게 한 일도 많았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다그친 일은 또 얼마나 많았던고. 그 때마다 그들은 그 같은 시달림에 괴로웠을 텐데 그에 대한 아무런 배려없이 몰아붙이기만 한 것을 반성하게 됐다.
108배를 하고 1080배를 할 때에는 땀도 많이 났지만 눈물도 많이 흘렸다. 처음에는 내 처지가 서러워 눈물을 흘렸고, 이후에는 부끄러운 마음에 또 눈물을 흘렸다. 시간이 지나자 차차 감사의 눈물과 기쁨의 눈물이 흘러 내렸다.
불교는 참회의 종교라고 누군가 얘기해 줬다. 우리는 많은 생애동안 알고 지은 죄와 모르고 지은 죄로 윤회의 사슬을 벗어날 길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일대사 인연을 해결해 주시기 위해 육신의 몸으로 오셨다. 수많은 겁 동안 각기 다른 몸을 받으시면서 수행하고 자기 몸을 필요로 하는 대상에게 기꺼이 보시했다. 부처님은 원력보살로서 수행하고 정진하고 드디어 깨달음을 이루었다. 우리도 누구나 수행하고 육바라밀을 실천하면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한다.
입문 교육, 불교대학 과정을 밟아가며 내 자신이 조금씩 성장해 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의 다툼이나 시비도 참아낼 수 있게 됐다.
사촌 형님 한 분은 내가 절에 열심히 다니고서 많이 달라졌다고 말씀하셨다. 정말 그럴까를 생각하며 그 말씀이 헛되지 않게 되며 더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크고 작은 가피가 전해졌다. 꿈에서도 있었고 현실에서도 나타났다. 그럴 때마다 환희심이 일어나고 다른 사람과 나눠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5년 전 광덕 스님이 입적하셨을 때 많은 법우님들이 슬퍼했고 또 아쉬워했다. 많은 대중을 교화하셨고 일깨워줬던 스님의 발자취를 더듬으며 비통해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더 큰 빛으로 이땅에 오시기를 기원하면서 수행에 더욱더 박차를 가하고 정진하는 법우들의 모습을 보며 위로와 격려를 받았다.
보시 중의 가장 큰 보시는 법보시라 했다. 우리는 항상 많은 사람을 만난다. 차에서 경전을 읽거나 책을 읽을 때 옆사람이 질문해 온다. 그 때 타종교인을 만날 수도 있고 초심자를 만날 수도 있다. 그 때마다 부처님 말씀 하나라도 제대로 전달할 수 있다면 불자로서 떳떳할 것이며 그들에게 바른 법을 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조계사에서 장궤 합장을 하고 연비를 하고 포교사 품수를 받던 날은 내가 다시 태어나는 것 같았다. 물론 그 과정이 아니라도 수많은 분이 전법하고 또 포교한다. 또한 소외된 이웃이나 어려운 곳에서 드러나지 않고 자신을 희생하시는 분들이 더 많을 것이다. 선택을 해야되나 말아야 하나의 문제로 많이 망설였다. 그러나 시험보기 위해서 지금까지 공부한 과정을 복습하니 교리가 명확히 기억되고 믿음도 확고해졌음을 알 수 있었다.
품수를 받고 나서 연수과정을 거치며 포교사의 활약이 더 필요하다는 것도 깨닫게 됐다. 아직도 손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너무 많다. 부처님을 찾고 싶고 알고 싶어하는 대중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됐다.
누군가 이런 말씀을 했다. 초기에 부처님 제자들은 ‘사성제’로써 전법했다고. 우리는 그 외 여러 경전들을 통해서 공부하고 수행하는 데 실제로는 전법에 게을리하고 있다고 한다. 아는 것만큼 전하고 역량만큼 가르쳐줄 수 있다. 누구나 전법자요, 누구나 불제자다. 아프고 괴로움을 느끼는 사람들, 외롭고 비통한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 잘못 살고 있는 데도 판단을 못하는 사람들 등등 우리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너무나 많다.
조금씩 양보하고 이해하고 남을 배려하고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는 사람이 많을수록 이 세상은 살기 좋아질 것이다. 아름다운 사회, 밝은 사회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 수록 이 국토가 청정해지고 불국토에도 가깝게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
선재동자가 찾은 선지식은 도처에 있다. 처처시불이라 하지 않든가. 우리의 스승 아닌 것이 없다. 사방에 문수보살님, 관세음보살님, 지장보살님이 수두룩하다.
아니 내가 그렇게 되기 위해 정진에 정진을 거듭해야 할 것이다.
부디 교만하지 않고 하심하며 보현행원 이루기를 원으로 삼고 방일하지 말아야 겠다. 보현행원으로 불국이루리. 마하반야바라밀. (끝)
2004-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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