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학으로는 치유될 수 없다는 병. 그 병을 관세음보살의 가피력으로 생명을 구한 저의 외손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1989년 10월 하순경에 일어났던 일입니다. 외손자가 생후 6개월쯤 되었을 때입니다. 어린아이가 몸에 열이 나고 기침을 약하게 해서 간단한 감기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래서 집 가까이 있는 영동 세브란스 병원에서 진찰을 받고 며칠동안 통원치료를 받았으나 별 차도가 없었습니다.
통원 치료를 받은 지 닷새째 되는 날, 담당 의사가 “입원을 시켜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의사 말대로 병원입원을 시키고 1주일 정도가 지났으나 별 차도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병은 점점 심해져서 의사선생 말이 “이곳은 병원 시설과 장비가 열악하니 신촌에 있는 세브란스 병원 본원으로 가야하겠다”면서 소개서를 써주었습니다.
처음에는 감기 정도의 대수롭지 않은 병으로 알았는데 더 큰 병원으로 옮기라고 하니 심상치 않은 병인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동안 가족에게 알리지 않고 있던 딸애는 신촌병원으로 옮긴 후에야 친정집으로 연락을 해서 외손자가 아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연락을 받고 아내와 함께 병원에 가려고 하였으나, 아내는 수은 중독으로 전신이 아파 활동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터라 같이 갈 수가 없었지요. 저 혼자 병원에 달려갔습니다.
병원에 도착했더니 담당의사가 “심장에 물이 생겨 주사기로 물을 뽑아내고 투약을 했다”면서 경과를 말해주셨습니다. 놀란 마음에 외손자를 바라봤지만, 녀석은 새근새근 잘도 자고 있었습니다. 온 가족이 모두 놀랐지만 눈을 감고 편안히 누워있는 손자를 보며 차차 회복되리라는 희망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이의 외가인 우리 집 식구들은 신촌 세브란스 병원처럼 큰 병원으로 옮겨온 것이 아주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내는 매일 아침 <금강경> 독송과 관음정근을 하고 낮에는 틈틈이 관음정근을 하는 한편 전화로 경과를 알아보곤 했습니다.
신촌 세브란스 병원으로 옮겨 입원시킨 지 한 일주일쯤 되는 날 딸애로부터 연락이 오기를 “허파에서 물을 빼고 투약을 해도 처음에는 효과가 있었으나 며칠 뒤부터는 효과가 없고 의사 선생님 말이 ‘자기들이 가진 의학지식으로는 더 치료방법이 없다’고 한다면서 더 이상 입원실에는 둘 수 없고 중환자실로 옮겨야 한다”며 울먹였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바로 병원으로 달려갔더니 외손자는 이미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중환자실 앞에 다른 중환자 보호자 10여명과 함께 사위와 딸애는 눈알이 벌겋게 충혈이 된 채 쭈그리고 앉아 시름에 잠겨 있었습니다. 저는 사위와 딸애에게 “사람의 목숨이란 천상천하에서 가장 귀중한 존재로, 죽음이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니 걱정하지 말고 마음을 굳게 가지라”고 우선 마음의 안정을 갖게 했습니다.
저는 여기서 이번에 새로운 것을 알게 됐습니다. 병원하면 아픈 환자들이 입원해서 치료를 받는 곳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병원에는 일반 입원실ㆍ응급실ㆍ중환자실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일반 입원실은 통원 처치만으로는 치료할 수 없는 환자들을, 응급실은 교통사고 등으로 시각을 다투어 빨리 조치하지 않으면 안 될 위급한 환자들을 수용했습니다. 중환자실은 치료해서도 회복될 가망이 거의 없이 죽을 날만 기다리는 환자를 수용하는 입원실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중환자실에는 환자 보호자를 비롯한 일체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어 환자의 상태가 어떤지조차도 전혀 알 수 없게 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중환자실은 입원이라기보다는 죽을 때까지 임시로 수용해 있는 수용소 같았고, 환자 가족들에게는 회복될 것이라는 희망은커녕 슬픔에 잠기게 하는 괴로움의 연속이라 하는 것이 타당한 것 같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생명을 구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서 집에 돌아와 아내와 “외손자 하나 없는 셈치자”고까지 얘기했습니다. 다음날, 아기를 잃었을 때 딸이 받게 될 충격을 적게 하기 위해 아내가 딸애에게 전화로 아이 하나 없는 셈하라고 했더니 “엄마!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내 입장이 돼서 내 심정을 이해하지 못해서 그리 말씀하십니까”고 하면서 전화에 대고 엉엉 울었다고 합니다.
저녁에 집에 돌아와서 이 이야기를 아내로부터 듣는 순간, 저는 눈물이 핑 돌아 이루 말할 수 없는 심정이었습니다. 자식에 대한 모성애가 이렇게 강하다는 것을 처음 실감하였습니다. (계속)
신행수기 잘 쓰려면 ⑥
표현 감정에만 치우치면 ‘알맹이’ 빠지게 돼
● 문장과 표현
저 마음속 깊은 무의식 속에 잠장된 억압, 분노, 패배, 눈물, 원망, 참회의 진실을 고해(告解)하듯 글로 써 내는 일만큼 마음의 평화와 영혼의 정화(淨化)를 가져다주는 일도 드물다. 쏟아내는 일은 슬픔과 고통의 완화이며 정신의 통풍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수기’를 쓰는 일은 무엇보다 종교적으로 ‘죄’ 사함 받듯 솔직하게 써야 하고 자기 자신에게 충실해야 한다.
대체로 수기는 주관에 치우친 글이요, 서정적인 글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감정에 치우칠 우려가 높다. 그런 글은 알맹이가 없기 쉽다. 사람의 정서에 호소하는 것은 서정(抒情)이요, 서정적인 글이라고 하지만 정으로 글의 내용을 채우다 보면 천속한 글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정(情)은 절제되어야 하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야 귀한 것이 된다. 슬픔의 애상(哀傷)적인 미문은 그리 품위 있는 서정이 못 된다.
문장은 곧 그 사람이요, 문체(文體)란 바로 그 작가의 개성과 급수를 나타낸다. 실력이 없을 때 우리는 문장을 꾸미게 되고 재주를 앞세워 글의 품격을 떨어뜨리게 되고 만다. 차라리 서툴러도 솔직하게 쓰는 편이 더 낫다.
첫째 문장은 간결해야 한다. 글은 짧고 뜻은 깊어야 함축이 있고 여운이 남는다. 둘째 문장은 평이해야 한다. ‘의현사명(義玄詞明)’, 즉 속뜻은 깊어도 말은 알기 쉽다는 것이다. 아무리 심오한 내용이더라도 쉽게 전달해야 하는 것이 목적임을 잊지 말자. 셋째 글은 정밀해야 한다. 서사나 묘사에 있어서 모호한 표현을 써서는 안 된다. 넷째 솔직하게 써야 한다. 글에 수식이나 과장이나 변명이 필요없다. 체험된 진실을 거짓 없이 써야 한다.
맹난자(수필가, ‘에세이문학’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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