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70. 4.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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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를 털고 때를 닦아라 <하>/최순옥 (경북 구미시)
오랫동안 청소부가 없어서 제대로 청소를 하지 않아서인지 스무 개가 넘는 화장실은 썩어있는 듯 했고, 오물 따위들을 치울 때 나는 고약한 냄새는 며칠 씩 코끝에 남아 영 거북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오물은 음식물의 변형일 뿐인데 왜 그리 언짢아하는가!
이 세상 모든 것은 윤회하지 않는 것은 없다. 음식물일 때는 좋고 사람을 살게 해주느라 똥이 되면 왜 더럽다고 생각하나. 이런 분별은 내 마음의 간사한 작용일 뿐이다.
나는 주리반특을 생각한다. 주리반특은 바보일 뿐 나처럼 영혼의 때는 없던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게도 부처님께서 ‘먼지를 털고 때를 닦아라’하셨거늘 나 같은 사람이야….
나는 <금강경>을 독송할 때마다 참회의 뜨거운 눈물을 흘릴 때가 많다. 그것은 내가 밤낮으로 분별만 하고 살았기 때문이다. 나만큼 나라는 생각, 남이라는 생각에 그리도 많이 분별하고 집착한 사람이 있었을까? 그러니 주인공이 나를 이리로 데리고 와서 청소를 시키는 것이 아닐까?
빗자루로 쓸고 나면 일차로 깨끗해지고 물걸레로 닦고 나면 환해진다. 그 위에 마른걸레질까지 하고 나면 유리마냥 투명해진 아름다운 검은 대리석은 본래의 빛을 띠고 그 곳에 내 얼굴이 비친다. 나까지 깨끗해지는 것 같다.
난생 처음 하는 회사생활이 나는 즐겁다. 내가 하는 일이야 가장 밑바닥 일이고 더러움을 씻는 천한 것이라 하나 그것도 생각하기 나름이다. 힘은 들어도 머리 아픈 일도 직업에서 오는 고민도 없다. 일할 때 나하고 얘기할 사람도 없다. 그래서 소리없는 염불을 얼마든지 할 수 있고 행선도 할 수 있다.
나는 하루 종일 주인공과 얘기를 나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오는 생각들은 주로 망상들이지만 주인공과 의논한다.
‘방금 그 생각은 중생이라 한 것이다’라고 내가 변호하면 ‘너를 합리화시키지 마라’고 즉각 주인공은 꾸중한다. 맞다. 주인공 하면 그래 네가 주인공이라 부르는 나는 바로 너다. 또 대답하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화장실 거울을 닦으며 나는 거울 속의 나를 보고 묻는다. 여기 와서 이렇게 청소를 하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 모른다. 도저히 모른다. 하나 한 가지 사실만은 안다.
나는 스스로가 아주 옳게 살았다고 생각하며 잘났다는 기분에 빠져서 마음속에 오만이 가득 들어있는 사람이란 것만은 안다. 그래서 먼지를 털고 때를 닦기 위해 이렇게 깨끗한 물로 좍좍 나를 씻는 것이다.
이렇게 나는 나의 삶을 순간순간의 마음을 철저히 관찰하는 것으로 한다. 방금 내가 한 말은 발림 말이 아니었나? 또 지금하고 있는 이 생각은 죄를 짓는 것이다.
왜 죄짓는 생각을 하는가? 하며 얼른 생각을 바꾼다. 매 순간을 깨어 있으려면 이 방법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매불망 공부 못 시킬까 전전긍긍하던 아이들 공부도 3년 전에 끝났고 모두 결혼까지 하였다. 아이들 공부할 때, 대행 스님의 말씀 가운데 “되고 안되고를 몽땅 놓아라”고 하시던 말씀이 내게는 풀길 없는 화두였다. “내가 들고 내가 해야 되는데 놓으면 어쩌란 말씀인가?”
그 말씀을 푸는데 얼마나 미련했으면 나는 5 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나는 그냥 묵묵히 일만 하고 결과는 주인공에게 맡기면 되는 이렇게 간단하고도 간단한 것을 왜 그리도 무겁게 안고 고민하며 뒹굴었는지…
이제 나는 모든 것을 주인공에게 맡기며 살고 있다. 스님 말씀처럼 뿌리가 제 나무를 죽일 리가 없다고 하는 불변의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 나이 우리나이로 예순 하나, 이순(耳順)이다. 글자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귀 이에 순할 순. 아마도 이 나이가 되면 귀로 듣는 모든 소리를 순하게 들어라는 뜻인 것 같다. 그런데 왜 이 나이에 하필이면 귀로 들려오는 소리들을 순하게 들어야 할까?
사람이 육십 년 이상 산다는 것은 나름대로의 아집도 그만큼 오랜 세월 단단하게 고치를 지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잘 살게 가르쳐 주기 위해서 이런 경계의 표지가 생겼을 것이다.
나는 평생을 일하며 살았고 화려하고 대우받는 자리에 가본 적이 없다. 그렇지만 복은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감격해 마지않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만났고 그 분의 말씀을 언제나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이상 무슨 복을 더 바라리.
오늘도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아난다여, 너 자신이 너의 등불임을 알라. 너 자신이 너의 안식처임을 알라. 너 자신 이외에 다른 안식처를 찾지 마라. 등불인 진리를 단단히 붙들라. 안식처인 진리에 굳건히 안주하라. 너 자신 이외에 어느 누구에게서라도 안식을 구하지 말라.” (끝)

신행수기 잘 쓰려면 ③

주제와 소재 직접 체험한 이야기 명료하게 전개해야

● 주제는 글의 중심사상
주제란 그 글이 담고 있는 중심사상을 말한다. 중심사상이란 곧 작자의 인생관 내지는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주제가 선명할수록 명료한 문장이 되는 것은 자명하다. 왜냐하면 주제는 그 글의 핵심적 사상으로 생각의 초점이 되기 때문이다. 만약 글에 초점이 없다면 그 글은 산만해져 통일된 사상을 오롯이 전달할 수가 없게 된다.
주제를 고를 때에는 작가 자신이 직접 체험한 것 중 자신의 능력으로 처리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며 자신의 역량에 맞는 것을 골라야 무리가 없다. 되도록 관념적인 주제는 피하는 것이 좋고, 주제는 되도록 한정되어야 하며 주제를 위해서 동원되는 소재의 선택에도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 소재는 글의 재료
소재라고 하는 것은 그 작품의 주제를 위해 동원되는 재료를 말한다. 가령 비행기 추락사고로 탑승객 전원이 사망한 사건이 일어났다고 하자. A라는 사람이 그날 아침에 심한 복통으로 병원에 갔다가 비행기를 놓치고 말았다. 이때 ‘운명’이라는 문제로 글을 쓴다면 주제는 ‘운명’이 되고 ‘비행기 추락사고’는 소재가 될 것이다. 허나 똑같은 ‘운명’이라는 주제를 갖고 여러 사람이 글을 썼을 때, 선택되어지는 소재가 제각기 다른 것은 작자의 인생관 내지는 생활의 폭과 많은 관련을 갖게 된다.
자신의 내부를 촉발할 만한 어떤 대상과 소재가 만나면 그 순간 스파크처럼 충격의 불꽃이 일어난다. 그때의 충격을 일러 감동 또는 감격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충격을 분석, 정리해서 주제로 삼으면 된다.
맹난자(수필가, ‘에세이문학’ 발행인)
2004-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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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감으로 체험하는 꽃 작품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