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70. 4.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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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행수기-먼지를 털고 때를 닦아라 <상>/최순옥 (경북 구미시)
지금부터 17년 전. 사는 집은 남에게 넘어가고 쌀 한 톨 남아 있지 않은 살림살이를 꾸리던 때가 있었다. 그 당시 고3, 중2짜리 자식들의 학비도 의식주도 나 몰라라한 채 나가서 딴 살림을 하면서 살고 있던 남편. 나는 그가 죽어간다는 연락을 받고 가는 길이었다.
내 마음속에서는 신혼 초부터 그 사람이 저질렀던 온갖 듣지도 보지도 못한 행실들이 떠올랐다. 당황하고 놀라며 고통 속에서 겪어냈던 ‘잊고 있었던 일들’이 어제 일인 양 끊임없이 솟아올랐다.
남편이 집을 나간 뒤 나는 내가 하던 외판 일을 그만뒀다. 그리곤 남의 가게 옆 빈터에 비닐을 치고 작은 꽃가게를 꾸리며 중학교 2학년이었던 막내까지 대학공부를 마치게 했다. 그동안 내가 겪어야 했던 온갖 고초들….
죽을 때가 되니 용서를 구하고 싶은지 죽음에 임박해서야 우리를 찾는 소행이 괘씸하기만 했다. 하지만 이미 지나가버린 그런 감정들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제 불자이고자 노력하는 사람이 아닌가?
나는 그리스도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오십 년이 넘게 한 가지 종교만 있는 듯 생각하고 살았다. 그 종교의 속성상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지만.
이런 내가 불교를 접한 것은 버스에서였다. 가끔 버스를 타고 가다 방송에 귀를 기울일 때면 가끔 주의를 집중하게 만드는 소리를 들을 때가 있었다. 나는 알 수 없는 그 소리가 좋아 방송이 잘 들리는 쪽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 그런데 그것이 다름아닌 불교 경전 <법구경>의 경구라는 것을 안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다.
내가 그 경전을 처음 대했을 때의 놀람은 거의 경이에 가까웠다. 세상에 <법구경>같은 경전이 있다니… 그 후 <한마음 요전>을 비롯한 여러 불교서적들을 허기만난 사람처럼 찾아 읽었다.
불교 성전을 끝으로 삼 년 여 만에 ‘불교야 말로 내가 찾는 종교다’라는 단언을 내리고 개종을 하였다. 그리스도교로 채울 수 없던 내 마음에 불교가 자리하기 시작했다.
그 후 남편을 이해하기도 한결 쉬워졌다. ‘전생에 내가 지은 것이다. 두 번 다시 이런 인연은 만들지 말자. 어디서 누구와 살든 잘살기만 바랄 뿐이다’라고.
그러나 불교경전을 비롯한 여러 경전들을 읽고 감격해 마지 않았던 나는 그 귀한 경전들을 번역하고 출판해 나 같은 사람의 손에까지 도달하여 부처님을 알게 해주신 운허 스님이 계셨다는 봉선사를 찾아갔다.
거기서 벅차오르는 뜨거운 감격으로 일주문에서부터 오체투지를 하면서 큰 법당까지 간절히 가고 싶었던 나였건만, 막상 아이들의 아버지가 죽어가니 와달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지난날의 온갖 일들을 끄집어내고 분해하고 미워하고 괘씸해하고….
참말이지 불쌍하다는 감정은 하나도 없었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한다면 이혼하지 않은 사실을 후회했다. ‘이혼했더라면 이런 귀찮은 일은 없을 것인데’라고….
나는 밤낮으로 안고 살다시피 하던 경전의 말씀을 진실로 이해했던 것이 아니었다. 다만 남편에 대한 생각을 철저히 끊고 냉담하게 의식의 밑바닥에 그냥 덮어 두기만 했던 것이다.
그것이 열려버리자 용해되지 않은 지난 일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유보된 채 잠자고 있던 온갖 감정들이 살아나서 목소리를 내었다. 그 산란한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나의 신앙의 현주소와 불교에 입문하기 전이나 후나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마음 상태를 확실히 볼 수가 있었다. 경전공부는 오직 읽기만 했지 전혀 내 것으로 녹이지 못한, 철저한 겉모습만의 불자였음을 새삼 깨닫게 됐다.
이런 나를 따갑게 느끼고는 억지이긴 하지만 그 사람과 나를 구별짓지 않으려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그리고 마음 편하게 해주면서 잘 보내겠다는 마음으로 병상의 그를 대면했다. 내 모든 감정은 죽음이 임박한 그곳에서는 불필요한 것이었다.
그는 폐암으로 말을 못했고 나는 <티베트 사자의 서>에서 읽은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 필요한 말을 해줬다. 그는 머리를 끄덕이며 알겠다는 표시를 했다. 아이들이 아버지의 장례를 잘 치러주는 속에서 그는 그렇게 갔다.
그는 자기 몸을 윤이 나도록 밤낮으로 가꾸던 사람이었는데 죽을 때는 그 몸이 말도 못했다. 남편이, 육체가 아닌 마음을 그렇게 가꾸었더라면 그가 한 행위의 반대되는 많은 아름다운 것들을 남기고 갈 수가 있었을텐데.
복잡했던 심신이 정리돼 갔다. 전에 일하던 곳에는 갈 수가 없게 돼서 나는 어느 회사에 청소부로 취직을 했다. 그런데 청소를 해보니 이게 막연한 그냥 일거리가 아니고 마음공부하는데 더 할 나위없는 기회라는 것을 알게 됐다.

신행수기 잘 쓰려면
글쓰기 요령 ② 자기 과시 지양, 독자 이해에 초점을

●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표현하고자 하는 창조적인 욕구는 나면서부터 부여된 인간 본연의 본성이라고 할 수 있다. 표현한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증거요, 자기 발현이요, 존재의 외침이다. 살아 있으면서 표현하지 못한다는 것은 억압이요, 대나무 밭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치는 이발사가 되게 할지도 모른다. 수필이나 수기가 독자에게 주고자 하는 가장 핵심적인 것은 감동과 정서적 만족이다. 감동, 독자의 가슴을 울리는 감동이란 과연 어떻게 전달될까? 그것은 글쓴이의 정직한 반성과 지순한 마음에서 비롯된다.
● 성찰의 거울
병이 깊어야 약의 효험을 알 수 있듯이 톨스토이의 영혼도 병들어 방탕과 도박, 간음과 성병, 낙제, 허영심, 자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그에겐 훌륭한 처방전이 있었다. 비틀거리는 자신을 냉엄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자기 성찰의 거울, 일기가 그것이었다. 어느 날 그는 일기장에 자신을 괴롭히는 세 가지 악마에 대해서 분석했다. ①도박열은 가능한 싸움 ②성욕은 매우 곤란한 싸움 ③허영심은 가장 무서운 싸움.
그의 인생 82년의 생애 중 나머지 반은 그것을 개선해 나가는 데 바쳐진 삶이라고 해도 무방하리라. 개선의 노력, 그 과정이 우리를 고무시키고 감동시킨다.
감동적인 글쓰기
남을 감동시키려면 필자는 우선 거짓이 없어야 하고 자기(글 속의 나)를 과시하거나 미화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신행 생활 중 지극한 기도 끝에 일어날 수 있는 심리적 환상, 신비한 체험 등은 독자가 납득할 수 있게 객관적으로 써야 한다. 맹난자(수필가, ‘에세이문학’ 발행인)

2004-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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