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열차에서 참으로 소중한 인연의 법문을 듣고 많은 의문점들을 해결하게 되어 너무도 기뻤지만, 단 한가지 뇌리에 빙빙 돌면서 시원치 않은 것은 “어떻게 열 번의 염불로 윤회를 벗어날까?”하는 것이었다. 염불만 하자니 지적이지 못한 것 같고, 믿지 않으면 선근이 적은 탓이니 괜스레 고민이 되었다.
그러나 기왕 부처님의 말씀이요, 스님의 권고를 따르기로 했으니 지적인 문제는 뒤로 하고, 진실한 믿음을 갖기로 했다. 길고 긴 염불 정진이 시작했다. 그런데 참으로 묘한 일이었다. 불안은 동풍에 구름 걷히듯 사라지고 단숨에 서울역에 다다랐다.
나는 역에서 내린 후 ‘부처님 감사합니다’를 수없이 읊었다. 마중 나온 우리집 어른도 놀라는 기색이었다. 얼굴이 밝고 편안해 보였다는 것이었다. 믿음과 염불의 위력을 실감하는 여행이었다. 그 후로 나는 다음 달을 기다리며 집에서도 열심히 염불하고 법문 듣는 생활을 계속했다.
내가 기다리던 또 한 달의 보름날이 다가와 나는 기쁜 마음으로 부산을 멀다 않고 내려 갔다. 스님은 어떤 거사님과 지리산을 간다 하시며 동행하자고 하여 따라가게 됐다. 그렇게 한번 가고 싶었던 칠불암이었다. 그 때는 마침 하안거 결제 기간이라 선방에는 출입금지 푯말이 걸려 있었다. 스님은 살며시 사립문을 열고 따라 오라 하시며 안으로 들어섰다.
선방 스님들은 더워서 문을 모두 열어 놓고 정진하고 계셨고, 마당의 푸른 잔디들은 좌선하는 듯 싱싱하게 버티고 있었다. 그런데 스님은 나에게 손짓만을 하면서 마당 한 가운데 잔디 위에서 절을 하셨다. 그러자 나도 스님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진한 감동을 받고 우러르는 마음으로 절을 하였다. 그 순간이 그렇게도 편안할 수가 없었다. 세 번 만 절을 하는 것이 아쉬워 오래오래 하는데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선방의 반대편 스님들은 절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듯했다. 절을 마치고 잔디 한 쪽에서 푸른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데, “스님!” 하면서 어른 스님 한분이 나오셨다. “스님! 어쩐 일이요?” 하자, 스님은 “입승스님, 제가 부처님들께 참배하러 왔습니다. 그런데 빈 손으로 와서 죄송합니다” 했다. 입승스님은 “아니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저렇게 훌륭한 보살님을 선물하시고” 하면서 나에게 다가와 “참 훌륭한 보살입니다. 이 이쁜 얼굴, 고운 옷으로 땅에 엎드려 절을 하는데 우리가 어떻게 공부를 게을리 하겠습니까. 보살님 오래 기억하겠습니다. 우리 스님들도 다 같은 생각입니다.” 하시면서 내 등을 두드려 주셨다.
나는 쏟아지는 눈물 때문에 아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입승스님은 “스님! 고마워요, 열심히 정진합시다” 하시면서 작별 인사를 하였고, 스님과 산길을 내려왔다.
나는 이렇게 감동적인 광경을 생전 처음 보았고, 마음에서 우러난 존경심으로 절을 하기도 처음이었다. 나는 “오늘 뵌 스님들이 꼭 부처님 같이 느껴져서 정말로 온 몸과 마음으로 절을 했습니다” 고 하였다.
그랬더니 스님은 “저 분들은 모두 부처님의 화신입니다. 부처님의 화신이 아니고서야 이 더운 여름에 저렇게 정진하겠습니까” 하셨다. 그리고 다시 “염불정진이 깊어지면 모든 생명, 자연까지도 부처님의 화신으로 다가온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먼저 진실한 믿음을 일으켜야 합니다” 라고 하셨다. 그때서야 나는 스님이 나를 어떤 방향으로 인도하고 계시다는 것을 짐작할 수가 있었다. 그러자 내 마음 심연으로부터 “열 번의 염불로 극락을 가니 수없이 정진하면 극락이 내 곁으로 다가오리라”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 날부터 이 믿음에서 단 한번도 물러서지 않았다. 내 인생에서, 아니 절 길을 걸은지 50여년 만에 진실한 믿음을 얻은 감격스런 날이었다.
스님은 누구든지 의문을 갖는 깨달음에 대하여 분명히 말씀하셨다. “염불은 내면의 번뇌를 소멸하고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수행이 아닙니다. 부처님의 자비광명에 대한 진실한 믿음으로 신앙의 빛을 일으켜 일체의 인연과 은혜에 감사하는 깨달음을 얻는 것입니다”라고 하신다. 나는 이것도 깨달음인가 하고 의심했으나 점점 날이 가면서 염불의 깨달음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느끼고 있다. 아직은 스님 같은 깨달음이 아니지만 괴로움, 분노와 원망이 일어날 때마다 “나무아미타불”을 부른다. 아미타 부처님의 광명안에서 살고 있다는 믿음으로 안심을 얻는다.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모든 인연과 하나하나의 은혜에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니 몸과 생활에 뚜렷한 변화가 일어나게 됨을 실감하고 있다.
내 비록 번뇌가 가득하고 욕망을 끊지는 못했지만 끝없이 아미타 부처님을 염하고 정토를 그리워하면 마침내 그 세계에 태어난다고 하셨으니 나는 진실로 믿고 따를 뿐이다. 믿음과 이해가 깊어지면 이 땅에서도 가슴 벅찬 환희심이 날로 크게 일어날 것이라 하셨으니 나는 그 말씀을 진실로 믿고 정진할 것이다. 저 또한 아미타 부처님과 스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염불수행을 보급하는데 보탬이 되고자 발원한다.
이 땅의 모든 스님들이 보다 좋은 환경에서 정진할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발원하고, 모든 불자님들도 진실한 믿음 일으키시기를 아미타 부처님전에 발원하나이다.
신행수기 잘 쓰려면
글쓰기 요령 ① 편안한 마음으로 ‘고백’하듯 쓰자
● 신행수기란 무엇인가
수기(手記)란 자기의 생활이나 체험을 기록한 글이다.
고요한 마음에 까닭없이 어떤 바람이 일어 풍랑을 일으켰다가, 그것이 어떻게 스러져 다시 고요한 상태가 되는가 하는 마음의 현상에 대한 기록이 신행수기에 포함될 수 있다. 평지풍파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의 ‘본래 없음’을 깨닫는 자각이라든지 성찰·반성·깨달음 그리고 각자가 신행 생활을 하는 동안 갑자기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영혼의 울림이거나 어떤 내적인 변화.
즉 전미개오(轉迷開悟)로 이루어지는 정신적인 한 단계의 성숙이거나 참회의 기도나 뜨거운 눈물로써 마음 한번 바꿈으로 해서 획득하게 되는 내면의 평정, 혹은 자유, 해탈에 이르게 되는 등의 신행 체험이 근간이 될 것이다.
● 수필과 수기
문학은 표현이다. 설명하려고 하지 말고 표현하려고 애써야 한다. 기쁨·슬픔·외로움 등의 정서나 평화·자유·억압·해탈 등의 관념은 눈에 보여지는 사물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문학 속에서 이런 것들을 표현해야 한다. “아! 나는 외롭구나.” 이런 식으로 표현한다면 그건 문학이 아니다. 옛 시인은 외로운 여인을 ‘추선(秋扇)’이라는 사물로 표현했다. 여름에 사랑을 받다가 가을이면 곧 버려지는 부채에다 외로운 여인을 비유했다. 이렇게 정서나 관념을 구체적 사물로 표현해 내는 것을 형상화라고 한다. 가령 “동전이 떨어졌다”는 표현을 “백 원짜리 동전이 마룻바닥에 똑똑 떨어져 또르르 굴렀다”로 고쳐 보자. 훨씬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마룻바닥에 떨어지면서 똑똑 두 번을 튀고 구르는 동전의 모양이 눈앞에 그려진다. 기왕이면 ‘수기’도 문학 작품이 되게 써 보자.
맹 난 자(수필가, ‘에세이문학’ 발행인)
(전문은 www.buddhanews.com에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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