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정진한지 이틀이 지나면서 모든 근심 걱정이 사라지나 싶더니 또 하나의 고민거리가 생기자, ‘나는 의문도 많고 병도 많다’고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스스로를 미워하고 탄식했다. 나는 몸이 쇠약해지면서 밤늦게 소변을 보는 버릇이 있었는데 방에서 멀리 떨어진 화장실 가기가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자정이 넘었을 무렵 방문을 살짝 열어보니 처마등 불빛이 비치기만 했지만 말만 듣던 산사의 밤은 적막했고 간간이 풍경소리만 어둠을 흔들고 있었다. 그러나 생리적 현상을 의지로 참을 수는 없었다. 다른 사람 잠을 깨울까 염려하며 살금살금 밖으로 나와서 모퉁이를 돌아갈 무렵 나는 안심처를 발견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나를 안심시켜 주던 스님 방에 불이 환히 켜져 있고 거기다가 방문이 반쯤 열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어이쿠 살았구나’하는 심정으로 안심하고 볼 일을 마쳤다. 속으로는 스님이 나를 보았을까 하는 생각으로 조금은 부끄러운 마음이 들긴 했지만 편안히 잠들었다.
다음날도 여전히 밤늦게 화장실 가는 일은 계속됐는데, 그날도 스님 방에는 전날처럼 불이 켜져 있었고 방문도 반쯤 열려 있었으며 그 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이상하게 생각해 아침공양을 마치고 스님을 찾아 뵙고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스님은 전혀 모르는 채 하시면서 “보살님이 몰라서 그렇지, 부처님은 염불하는 사람들을 항상 지켜주십니다. 사람들은 눈으로 보는 것만을 인정하려고 하는데 그것은 진실한 믿음이 부족한 탓입니다”라고 하셨다.
나는 그 때 정말로 놀라고 말았다. ‘아! 내 곁에 부처님이 계시다는 말씀을 나는 잊어버리고 살았구나’하고. 다음날 부터는 밤에 화장실 가는 일이 두렵지 않게 되었다. 나는 진실한 믿음이 무엇인가, 그리고 스님들의 고행이란 참으로 견디기 어렵다는 것을 체험한 뜻깊은 기간이 되었다. 그리고 나도 할 수 있구나 하는 자신감을 갖게 되면서 너무도 기뻤다.
내가 염불한지 보름이 되었을 때 스님은 이제 많이 좋아졌으니 집에 가도 되겠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틈나는대로 불교 공부를 하라고 권하시고, 집에서 염불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나는 떠나야 하는 것이 무척 서운했지만 다음날을 기약하고 서울 집으로 올라왔다.
집에 와서는 가족들에게 절에서 있었던 사소한 일들까지 이야기를 했다. 그랬더니 우리집 어른은 참으로 좋은 곳이라고 하면서 한달에 한 번씩은 내려 갔다 오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가족들의 환영에 너무도 기뻐서 눈물이 쏟아졌다. 다음날 보름녘에 나는 큰 아들의 차를 타고 며칠 머무를 생각으로 멀고 먼 부산까지 내려갔다.
내가 내려가자 스님은 매우 반가워하셨다. 나는 미리 메모해간 것으로 스님께 여러 가지를 물었다. 물론 교리를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점이 있었지만 “믿음으로써 안심을 얻는다”는 신념에 찬 말씀에 깊은 감동을 받기도 하였다. 그리고 “복이란 부처님의 말씀에 따라 사물을 바라보고 실천하는데서 오는 것이지 혼자 복을 기원하는 기도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라는 말씀을 듣고, 지난 신행생활을 회상하고 있었다.
그 때 스님께서 “보살님! 아미타불 염불을 한 번 해보시겠습니까?”라고 묻자, 나는 깜짝 놀랐다. 나는 속으로 ‘내가 명이 짧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저 스님 이미 알고 계신 것이 아닐가’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는 불안한 마음을 감추면서 얼른 “큰스님이 그러시는데 젊어서는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늙어서는 아미타불을 부르라고 하시던데요”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스님은“나는 보살님보다 젊은데 아미타불만 부르지 않습니까”라고 하시면서 큰 소리로 껄걸 웃으셨다.
스님은 한참 계시다가 말씀을 이으셨다. “보살님, 순수한 마음은 높이 평가하지만 이성적이지 못하면 깨달음과는 거리가 멉니다. 불교의 가르침은 삶에서 야기되는 어려움들을 하나씩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근원적이고 전체적인 문제들을 통째로 해결하는 것입니다. 이 방법에 스스로 깨달음을 얻는 법과 믿음으로 해결하는 법이 있습니다.
염불은 믿음으로 해결하는 법입니다. 염불은 나무아미타불을 열 번만 부르면 윤회를 벗어난다는 말씀을 진실로 믿음으로써 안심을 얻고, 인과법을 믿고 선행을 행하며 삶에 충실하는 수행법입니다”하시고는 잠시 후 이어서 “인생의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는데 젊은이와 노인이 따로 있을 수 없고 복받는 법과 극락가는 법이 따로 있을 수 없습니다. 극락이 지극한 복입니다. 또 죽음이란 늙어서 오는 것만도 아닙니다. 보살님은 서울이 집이니 우리나라의 중심이요, 현대의 고등교육까지 마쳤으니 시골 노보살이 하는 염불과는 무엇인가 달라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하셨다.
나는 스님의 말씀에 부끄러워 어쩔 줄을 모르며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그런데 스님은 다시 “보살님은 순수한 마음을 가졌으니 진실한 믿음을 일으키기 쉬울 뿐 아니라, 깨달음도 빠를 것입니다”하셨다.
나는 귀가 번쩍 뜨이고 다시 마음이 밝아졌다. 칭찬과 더불어 깨달음도 가능하다고 하셨기 때문이었다.
참으로 지금껏 듣지 못한 법문이었고 내 정신을 송두리째 이리저리 쏠리게 하는 마력을 가진 듯했다. 나는 한 말씀도 놓치지 않고 기억하고자 귀를 기울여 경청했다. 스님은 마무리를 하시면서 “나무아미타불 열 번 부르면 윤회도 벗어난다는 말씀을 진실로 믿는 사람은 참으로 선근이 깊은 사람입니다”라고 하시고 마치셨다.
나는 사흘이 지난 후 아쉬웠지만 약속된 날이 되어 서울행 열차 편에 몸을 실어야 했다. (계속)
신행수기 일년내내 받습니다
삶을 살아가면서 가슴속에만 꼭꼭 담아두었던 감동깊은 신행체험들을 진솔하게 적어 보내주십시오. 연중 접수한 신행수기 가운데 우수작은 소정의 고료를 드리고 신문에 연재하며, 연말에 최종 심사를 거쳐 시상합니다.
● 주제: 신행 및 수행 체험, 불심으로 고난을 이겨낸 이야기
● 분량: 200자 원고지 30매 안팎(A4용지 4장)
● 접수처: (110-170) 서울시 종로구 견지동 110-33 현대불교신문사 편집국 신행수기 담당자
● 문의 전화: (02)722-4162
● 인터넷 접수: thatiswhy@buddhapia.com

































.gif)
.jpg)




.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