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온 뒤 네 자식 키우면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친정 어머니 따라 익힌 절길이 50년이 넘었다. 어릴적 어머니의 지극한 신심을 회상하면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었다. 어머니는 매달 초하룻날은 비바람이 부나 눈이 오나 종로에서 삼각산 어느 절까지 쌀을 머리에 이고 단 한번도 땅에 내려 놓지 않고 부처님 전에 다달았기 때문이다. 그러시던 어머니가 “오늘 부처님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부처님 가슴에 손을 얹고 간다”는 말씀 남기시고 극락왕생하셨다. 그 후 나는 자식들 훌륭히 성장하고 복된 집안 이루어 달라고 기원하며 명산대찰 찾아 수없이 불공을 드렸다. 사실 불교에 대한 상식도 없이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만 굳게 굳게 믿고 부처님 관세음보살 부르고 불공드리는 일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던 내가 불교에 대해 진실한 신심을 일으킨 것은 어떤 계기를 맞이하면서부터였다. 20여 년 전에 육체적으로 큰 병이 없으면서도 몸이 점점 쇠약해져서 활동하는데도 힘들게 되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심하게 아플 때마다 꿈속에서 산에서 내려오신 스님이 나타나시어 “염려말아라”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꿈 속의 일이지만 분명히 이것은 부처님의 가피력일 것이라 믿고 더욱 열심히 “부처님 저를 낫게 해주셔요”라고 애원하며 수없이 부처님을 불렀다. 오직 의지할 곳은 부처님이라고 생각했고, 부처님을 부르면 마음이 편안할 뿐 아니라, 심하게 아픈 것도 나아졌기 때문이었다.
나는 건강이 좀 회복되자 불교서적을 접하면서 ‘종교란 무엇인가?’ ‘깨달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그러나 왠지 신심도 예전처럼 깊어지지 않았고, 이곳저곳 절을 찾아 법회를 다녀보았으나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이해가 되지 않는 형태의 방생법회, 산신기도, 칠성기도, 정초부터 행하는 신중기도 등 의문이 많았고 교리와 신행생활이 어긋나는 점을 해결할 수 없었다. 불교신도가 된 것이 부끄럽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처럼 의문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신심이 떨어지자 다시 몸이 아파 오기 시작하여 거동까지 불편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우연히 몇 번 뵌 스님의 소개로 부산 범어사 한 암자의 스님을 찾아 뵙게 되었다. 산길을 올라 갔는데 다른 사람이면 20분 정도 걸릴 곳을 한 시간이나 걸려 올라갈 정도로 나의 몸은 쇠약해 있었다. 스님께 먼저 여기까지 오게 된 동기를 말씀드렸는데, 그 가운데서 아플 때마다 스님이 세 번이나 나타나셨다고 말씀을 드리면서 다른 사람들처럼 그렇게 염불을 하지 않았는데도 그럴 수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 스님의 모습은 차갑고 엄하게 보였는데 왠지 질문을 잘 받아주실 것 같다는 느낌을 가졌기 때문에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의문을 물었던 것이다.
스님은 “그럴 수 있습니다. 꿈에 나타나신 분이 아마 관세음보살님이실 것입니다. 열심히 염불하지 않아도 꿈에 불보살님을 뵐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를 선근이 깊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쉽게 말하면 혈통의 문제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집안이 대대로 불심이 깊은 경우 말입니다”라 하시면서 자세히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 보살님이 선근이 깊으니 자식들도 모두 선근이 이어져 다 훌륭할 것이라고 하시면서 신심을 가지고 부처님 가르침에 의지하라 하셨다. 나는 선근의 뿌리가 대대로 이어지는 것이라는 스님의 말씀에 어릴 적 친정 어머니 생각이 떠올라 눈물이 울컥 쏟아졌다.
다시 믿음을 일으켜 예전처럼 열심히 염불하리라 다짐했다. 스님의 말씀을 듣고 여러 가지 의문을 푸는 가운데 낯선 곳을 찾아오면서 가졌던 불안감이 사라졌다.
그날 저녁 예불시간 전에 스님이 나를 불러 “오늘부터 스님들과 똑같은 생활을 한번 해보세요” 하셨다. 나는 어떤 일인지도 모르고 “예, 따라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스님께서는 매일의 일과표를 주셨다.
새벽예불 사시불공 저녁예불에 하루 세 번 참석하되 108번씩 절을 하라 하셨다.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하는 몸으로 어떻게 절을 108번이나 할까 생각하니 아찔했지만 한 번 대답한 일을 돌이킬 수가 없었다. 스님은 절을 빨리 하지 말고 천천히 하라 하고, 일어날 때도 바닥을 짚고 일어서라 하면서 자상하게 가르쳐 주셨다.
나는 내 힘이 닿는 데까지 하리라 마음 먹고 그 날 저녁 예불시간부터 일과를 시작했다. 병이 낫고 자식들에게 선근이 이어진다는데 무엇을 마다하겠느냐 라는 나의 신념 때문이었다. 누군가가 욕망을 버리고 기도하라고 했지만, 나의 그런 바람들은 진실로 순간 순간의 간절한 염원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불자라고 하지만 그렇게 절을 해본 적은 처음이었다. 그날 밤은 여행의 피로와 더불어 절을 많이 한 탓에 어떻게 잠을 잤는지도 몰랐고, 새벽예불 목탁소리에 놀라서 잠을 깼다.
새벽예불을 마쳤더니 걸음을 제대로 옮길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른 아침 졸음이 몰려오고 있을 때 아침 공양시간을 알리는 종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고통이라고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몸이 아픈 후로부터 아침공양을 걸렀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물에 말아서 조금 먹고는 날이 새자 스님을 찾아 뵙고 나의 상황을 솔직히 말씀드렸다. 절을 하면서 숨이 차서 관세음보살 명호를 부를 수 없다는 것과 108번의 숫자를 세기가 너무 힘들다는 것이었다. 자식들과 병의 쾌유를 위해 기원해도 괜찮느냐고 물었다.
스님은 웃으며 가만히 보시다가 말씀하셨다. “그러면 명호는 부르지 말고 스님의 염불 음성을 또렷이 듣기만 하세요, 절은 숫자를 세지 말고 염불이 끝날 때까지 천천히 하세요, 자식들 염려는 말고 보살님 병의 쾌유만 기원하세요”하셨다.
나는 스님께서 내 마음을 뚫어보는 것 같아서 너무 기뻤다. 빨리 건강이 회복되어 의문들을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정진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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