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70. 4.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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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정성이 큰 사랑으로 <중>-유경남 (용인시 기흥읍)
우리 회원들 중에는 아직 불교 기초교리도 잘 모르고 기복신행으로만 일관하는 불자들이 있었다. 그래서 틈만 나면 제대로 배워 그들에게 부처님 말씀을 오롯이 전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자비한 마음이 곧 도량’이라는 게송이 있다. 일반적으로 도량 하면 사찰을 연상하게 되는데, 이 게송을 염하다 보면 우리 칠봉회 회원이 봉사하는 이 장소가 바로 도량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회원들에게 <봉사의 길>이란 책도 구입해서 읽어 보라고 나눠 주기도 하고 큰스님의 법어집도 틈틈이 읽어보라고 권했다. 서로 돌려가면서 읽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흐뭇하기도 했다.
우리 칠봉회 회원들이 차츰 불교적인 삶을 살고자 노력하는 모습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회원들 요청에 의해서 조금씩 회비를 모아 이웃 사랑도 나누었다. 소년소녀 가장들에게 장학금도 주고 무의탁 노인들에게 김장 김치와 떡도 나눠주면서 위로도 해드렸다. 이런 활동으로 1993년 강북 구청장으로부터 감사장을 받기도 했다.
회원들이 질서있게 한자리에 앉아서 중환자 수술실에서 쓰이는 거즈를 접을 때는 그 손놀림이 흡사 기계와 같이 움직인다. 자기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를 만큼 한 가지 일에 심취해 있는 듯 보인다. 이럴 때는 회원들의 마음이 한결같이 비어있어 잡념이나 번뇌와 망상 따위는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을 것이다.
굳게 다문 입과 눈을 아래로 내리 깔고 잽싸게 움직이는 손놀림만 응시하는 그 표정을 굳이 표현한다면 ‘텅빈 충만’이라고나 할까. 내가 몇 해 전 법정 스님의 수상집을 읽고 바로 이 ‘텅빈 충만’이란 글말을 보고 묘한 매력을 느꼈다.
도대체 그 경지가 어떠한 경지일까? 단 한번만이라도 나는 그 경지를 체험해 보고 싶어서 이런 말을 해 본다. 우리 회원들은 한결같이 정성을 다해 봉사활동에 임한다. 그래서인지 1993년 연말 평가회에서 서울대 병원장으로부터 단체 감사패를 받았다.
회원들이 몇 년간 같이 모여서 봉사하는 동안 진실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우리 회원이자 나의 제자이기도 한 김종순 법우는 71사단 부사단장님이 근무하는 부대에 아직 군법당이 없어 안타까워 한다는 말을 전해 듣고 열심히 성금을 모았다. 그렇게 애쓰는 모습을 보고 우리 칠봉회 회원들도 많이 동참해서 군법당 건립에 일익을 담당했다.
1993년 10월 청명한 가을날 석정 스님을 모시고 군 불자와 그 가족들이 모인 법당에서 성대히 점안식을 봉행했다. 모두가 환희심에 찬 모습들이었다. 그 자리에서 김종순 회원이 그 부대 군불자 회장으로부터 감사패를 받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그것을 보고 부처님의 위신력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작은 시냇물이 모여 큰 강물이 되어 흐르듯 나의 주변 사람 모두에게 봉사의 의의와 사랑을 나누는 방법을 알리고 싶었다. 그래서 옛날 내가 교직에 있을 때 친하게 지내던 동료들과 친목 모임을 만들어 한달에 한번씩 강원도 원주에서 만나고 있을 때, 이웃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모임을 만들었다. 마음을 모아 한 달에 한번 씩 양로원을 찾아 음식을 대접해 드리면서 자비심을 키우기 시작했다. 그 중 한 친구는 그것을 계기로 열심히 봉사활동을 했다. 솔선수범하는 훌륭한 봉사자로 많은 활동을 하여 원주시에서 인정을 받고 시민상까지 받았다.
1993년 어느 날, 나는 절에다 조상 천도재를 올리고 백일기도에 들어갔다. 지하철을 타고 귀가하던 중 옆자리에 놓인 신문을 집어드는 순간 제일 먼저 나의 눈길을 멈추게 하는 기사가 있었다. 잠실 복지관에서 국어사랑 지도교사 자원봉사자를 구한다는 기사였다. 일주일에 2회 2시간씩 20대에서 50대 중반의 20여명에게 한글을 가르쳐 달라는 부탁이었다. 이들은 모두 집안 형편이 어려워 공부할 기회를 놓친 문맹자들이었다. 나는 초등학교 교사 경력이 있기 때문에 쾌히 승낙을 하고 다시 교단에 서는 기분으로 그들을 열심히 가르쳤다.
문자 교육도 중요하지만 수업이 끝나면 나는 그들의 인생 상담자가 되어 여러가지 하소연을 들어주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사연이 많았다. 나는 그 자리에서 대행(안양 한마음선원장) 큰스님의 법어 중 “인생은 모르면 생존경쟁이지만 알고 보면 공부다”라는 가르침을 인용해서 아주 자연스럽게, 그리고 알기 쉽게 사성제에 대해 설법을 했다.
처음 4가지 고통에 대해서는 뭐 다 아는 사실을 가지고 말하느냐는 듯 시큰둥한 반응 일색이었다. 그러나 그 다음에 ‘애별리고’, ‘원증회고’, ‘오음성고’, ‘구부득고’를 말해주니까 진지하다 못해 나중에는 심각한 표정으로 경청해주어 나를 감동케 했다. 이어 인연의 법칙을 가르쳤다. 그들은 더욱 열심히 공부를 하여 책도 읽을 수 있게 되고 자기 의사를 글로 나타낼 수 있고 은행에 가서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일을 볼 수가 있게 됐다. 그들은 하나 같이 세상이 달라 보인다고까지 말하며 기뻐했다.
나의 가르침이 그들의 인생에 많은 도움이 되기를 빌며 1년 과정을 마쳤다. 헤어지기 섭섭하여 눈물 흘리는 분들께 인연이 닿으면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위로하며 글사랑모임 회원들로부터 감사패를 받고 떠나왔다. 당시 나는 청주에 포교차 자주 내려가야 할 일이 생겨서이다.
열악한 포교당 운영에 힘들어 하시는 스님을 도와 불교서적(기초교리, 큰스님 법어집) 불교용품을 실어 나르며 포교활동에 적극 노력한 결과, 지금은 젊은 엄마들이 불자가 되어 열심히 신행생활을 하고 있다. 참으로 가슴 뿌듯한 일이다. 부처님께 감사드린다. (계속)
2004-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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