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2월 그해 학년 말에 나는 27년간의 긴 교직생활을 마감하고 전업주부로 돌아가기 위해 다니던 학교에 사직서를 제출 했다.
그동안 5남매의 자녀들이 성큼성큼 자라서 해마다 반복되는 상급학교 진학문제와 어느 새 훌쩍 커서 이제는 혼인 적령기가 가까워진 큰 아이들의 혼사문제 등을 차분하게 들어앉아서 하나하나 정리해 나가기 위해서였다.
돌이켜보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기만 했던 지난 세월이었다. 이젠 시간적인 여유가 좀 있어서 오랜만에 읽고 싶었던 책도 읽고 명상도 해보고 가끔 등산도 하면서 새록새록 떠오르는 지난날의 추억 속을 헤매이기도 했다.
아주 오래전 경주로 수학여행 갔을 때 불국사와 석굴암을 견학하면서 경내의 목탁소리에 맞춰 은은히 흘러나오는 스님의 독경소리에 이상하리만치 가슴 벅찬 환희를 일으켰던 기억이 되살아나기도 하였다.
나는 등산할 때마다 산사에 들러 스님의 법문도 듣고 법당에 들어가 참배도 드렸다. 나는 신도카드를 만들고 불자가 되어 절에 다니기 시작하였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기 위해 곧바로 불교교양대학에 입학해 불교 공부를 시작했다. 그때 무진장 스님이 종종 오셔서 법문을 하셨는데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이란 <법성게>에 나오는 한 구절을 가지고 법문하실 때 처음 발심할 때가 바로 부처를 이룬 때라고 하셨다.
나는 절에 다니면서 열심히 기도도 하고 불경도 외웠다. 가끔 큰스님의 법문도 듣고 새로 사귄 도반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내 눈앞에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더 크고 넓고 광활한 세상이 전개되면서 활동 영역이 무진장 넓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아직은 사성제가 무엇인지, 육바라밀이 무엇인지도 잘 모를 때였지만 스님의 법문 중에서 이타행(利他行)이란 낱말이 내 머릿속에 들어와서 나에게 채찍질을 하며 떠나지를 않았다.
“남을 이롭게 한다?” 골똘히 생각하다가 문득 자원봉사가 생각났다.
어떤 방법으로 할까? 궁리를 하면서 앞뒤를 살피다가 교육자 가족들로 구성된 봉사단체(상록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 남편은 모 고등학교 교장선생님으로 재직 중이어서 나는 자연스럽게 그 단체에 가입해 봉사활동을 같이 할 수 있게 되었다. 남편은 천성이 외골수인 분이라 내가 봉사 활동을 하려면 남편의 이해가 꼭 필요했다. 그래서 우선 남편도 불교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 독서를 좋아하는 그에게 이광수 소설 <원효 대사>란 책을 사다 머리맡에 두었다. 의외로 재미있게 읽는 남편의 모습을 보고 그때부터 계속해 불경을 비롯한 큰스님 법어집 등을 많이 구입해 주었다.
어느 정도 불교를 이해하고부터는 쉬는 날이면 나와 같이 절에도 나가고, 시간이 있으면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참선을 했다.
나는 곧바로 그 단체(상록회)에 동참하여 여러 선배들과 함께 자원 봉사를 했다.
상록회의 활동 분야는 매월 정기적으로 날짜를 정해 놓고 회비를 모아 고아원과 양로원을 찾아가고 내복도 사다주고 위로와 격려를 해주고 오는 일이다.
다음은 국군 통합병원, 보훈병원에 가서 수술실에서 쓰는 거즈를 접는 일, 우리 손이 필요한 일을 도우며 가끔 과일도 사다 나눠주며 위로를 해 드린다.
나는 누구를 돕는다는 일이 이렇게 보람있고 즐거운 줄을 미처 몰랐다. 봉사하는 횟수가 늘어날 수록 점점 매료되어 달력을 보며 그 날짜를 기다리는 정도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 밖에 상록회에서는 서울시 교원 유자녀 학생의 장학금과 체육선수 육성 지원을 위한 기금마련 바자회를 여러 해 실시하여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재활용품을 이용하여 회원들이 손수 만든 공예품도 팔고 집에서 쓰지 않는 물건들을 가지고 와서 알뜰시장도 열어 기금을 마련, 교육자유자녀 장학회를 설립했다. 유자녀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면 그 가족으로부터 눈물로 얼룩진 감사의 편지도 받았다.
1984년 4월 13일 서울시 교육감으로부터 교육가족으로서 귀감이 되는 활동에 헌신, 수도교육발전에 기여했다는 내용의 감사장을 받았다.
1983년부터는 서울대학교 병원에서도 봉사를 시작했다. 우리가 맡은 일은 국군 통합병원과 같이 중환자 수술실에서 필요한 거즈를 접는 일이었다. 중환자실에 입원한 환자들은 대부분 목숨이 경각에 달린 분도 많았다. 우리 회원들은 진심으로 그분들의 쾌유를 기원하며 일에 임했다. 이렇게 변함없이 10여 년간 고락을 같이 하며 봉사활동을 하는 상록회 회원들이 이제는 연세도 많이 들고 남편들의 정년퇴직과 함께 뿔뿔이 헤어지고 현재는 단 4명만 남게 되었다.
우리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일을 계속하자고 다짐을 하면서 다시 일할 사람을 찾아보았다. 그 당시 나는 다니고 있는 절에서 신도회장직을 맡고 있었는데 예불이 끝나고 주지스님께서 회장으로서 하실 말씀이 있으면 하라고 시간을 내주셨다.
나는 거기에서 신도들에게 자원 봉사의 필요성과 의의에 대해서 힘을 주어 이야기 했다. 그랬더니 다들 의외로 반가워하면서 봉사를 하고 싶어도 기회가 닿지 않아 못했다는 사람들이 많아 이래저래 37명의 회원이 모이게 되었다. 또 그 회원들과 친히 지내던 도반들까지 동참하여 몇 달 안에 70여명의 회원이 모이게 되었다. 그때부터는 칠봉회(七奉會)라는 이름 아래 회장으로 선출이 되어 많은 회원들을 인솔하게 되었다.
칠봉회의 뜻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매월 7일, 27일을 정해놓고 봉사하는 날이란 뜻이다.
이제는 명실공히 서울대학병원 봉사팀 중에서가장 많은 인원으로 구성된 자원봉사 팀이다. 우리는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열심히 봉사를 하였다.
1992년 연말 평가회에서 오랫동안 자원 봉사자로 환자 진료에 공로가 크다며 서울대병원장으로부터 감사장을 받았다.
우리가 하는 일에 큰 보람을 느끼며 나는 불교를 좀 더 체계적으로 배우기 위해 한국불교법사대학에 입학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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