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에스트로겐(호르몬) 주사로 현재의 종양을 삭혀서 2cm정도로 줄여 수술을 하면 된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3cm이며 출혈과다로 수술도 위험하다고 했다. 일반적인 자궁내 물혹은 6cm정도 되면 수술을 하지만 내막 근육종은 위험한(출혈과다) 부위라고 해서 의료보험 혜택도 되지 않았다.
손가락 한마디보다 작은 앰플 하나에 이십팔만원, 적어도 석달동안 주사를 각각 한차례씩 맞아야 하고, 한 달에 한 번 주사를 맞고 난 후 수술이 결정되는 것이다.
삶의 허탈함. 움직여지지 않는 육체는 시체처럼 누워있고, 검사결과와 치료방법까지 나왔다. 자궁추출은 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결혼을 할 것이니까! 그러면 후자를 선택해야만 한다. 병실에 누워 머리는 무겁고, 아프고, 이쪽 저쪽을 돌리지 못한 채 엄청난 고통이 의식 자체를 점령했다. 어지럽다. 눈동자의 초점을 맞출 수가 없었다. 자신도 돌고 물체도 돌고 계속 중심이 흔들리는 채로 사물이 돌고 있다. 고통으로 3일 낮밤을 보내고 나니 두통도 덜하고 항생제 주사와 치료 때문에 하혈도 거의 멈추는 것 같았다. 청정한 의식만 살아 움직인다.
움직일 수 없는 육체는 눈만 천정을 향하고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달리기 한다. 학교출강이 걱정이 되고, 한달 결제가 가슴을 짓누르고, 학원정리는 생각처럼 쉬이 되질 않고 쌓이는 부채는 머리위까지 올라와 있는지라. 아 어찌하면 좋을까. 어느새 염하고 있는 모습에 눈물 떨구고. ‘시현 원력홍심 대자대비 구고구난 관세음보살….’ 달리 어떤 방법이 없었다. 안으로 안으로 오로지 한 마음. 님이여, 고통으로부터 살려주소서. 어느 누구도 해결해 줄 수 없는 상황. 오로지 홀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면 집안의 암울함과 몰락의 선상 위에 있었다. 주치의는 회진 때마다 조언을 했었다.
“자궁내막의 근육종양은 사라지지 않으니 작게 하여 질 내경으로 수술합니다.” 치료만하면 언젠가 반복된 하혈은 출혈과다로 생명에 위험하므로 꼭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도 저것도 사람살이가 싫었다. 가능하다면 나의 몸에 칼자국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이미 종양 삭히는 주사는 맞았다. 3주 뒤에 다시 입원해 검사 후 수술을 해야만 했다. 숱한 고민과 번뇌 속에도 검사후 수술을 해야만 했다. 숱한 고민과 번뇌 속에도 봄기운은 온 우주에 생명력으로 가득 찼다. 의식도 어지러움도 조금식 땅에서 오르는 순수에너지처럼 명쾌해져 갔다. 삶은 인간 업연의 연결과 습관의 연속적인 굴레에 묶여 있음이 선연하게 보였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나의 직관력은 삶의 모퉁이에서 어지러운 그네마냥 흔들리고 있었다. 병실 베란다에는 붉은 연산홍, 화사한 여인처럼 화려하게 화장을 했다. 빗물에 촉촉이 젖어 끊임없는 생명력을 전해줬다.
4월 14일 나의 어학원 원룸으로 돌아왔다. 쉴 수가 없는 나의 일. 고통과 고민 속의 업무시간에서도 <금강경> 독송은 나의 휴식처이고 안식처였다. 3주후 병원엘 갔다. 수술은 하지 않은 채 되돌아 왔다. 오월 푸른 잎의 풍성함이 기운차려라 한다. 어학원은 그렇게 기다려도 받아줄 인연이 나타나지 않아 많은 손실을 보고 공중분해 시켜버렸다. 인연있는 사람에게 각각 필요한 책과 부품, 사무기구, 모든 물건을 남김없이 나누어주었다. 전세금으로 부채를 정리하고도 빚이 남았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빠의 사업부도와 그로 인하여 집안은 무상과 허무와 절망의 분위기였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제행무상이라고 그랬나보다. 가슴 속 뼛속까지 무상함이 아려왔다. 무엇이든지 영원하지 않았다. 영원하지 않다는 것 자체가 괴로움이라는 것이 절절이 와 닿았다. 그것이 집착하는 나의 마음 때문이라는 것도 알았다. 내 것, 나의 것이라는 강한 집착이 나를 아프게 했다. 진정한 나는 무엇이며 진정한 너는 무엇인가. 끝없는 질문을 던졌다.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의 실체도 희미한 착각이자 허구이며 아름다운 환상으로 보였다. 우리나라가 부도난 것처럼, IMF란 단어가 한 순간 삶을 허망하게, 모든 것을 어떤 형상도 없이 순식간에 사멸하게 만들었다.
어떻게 하면 난 행복할 수 있을까? 이것이 더 중요했다. 그 행복감의 실체는 형체도 없이 부질없는 망상이고 한 생각이었음을 알았다. 그래서 부처님은 제법무아라고 하셨나보다.
구구절절이 가슴에 와 닿는 경전과 <금강경> 말씀에 통곡을 했다. 너무나 암울하여 자살이라는 것을 생각했었다. 숱한 날을 홀로 방안에서 기도를 하고 경전을 읽고 침묵의 언어가 내 마음과 상응할 때 고요한 생명력만 이어가고 있었다.
육체는 자신을 방해했고 자신을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감각과 감정은 의지와 판단을 두렵게 만들고 불안정하게 했다. 때때로 아랫배가 아팠다. 두번 다시 병원에 가지 않겠노라고 결심하고 난 후 병원은 가지 않았다. 그 이후 출혈은 없었다.
어학원을 정리한 후 학교출강만 시간강사로 움직이고 있을쯤 초가을 어느 날 부산에 살고 있는 법우 한 분이 찾아왔다. 팔공산 갓바위로 1박 2일간 기도를 가자고 그랬다. 몸과 마음을 씻고 법우와 함께 늦은 오후로 1박 2일간 정진하자고 했다. 몸과 마음을 씻고 법우와 함께 늦은 오후 팔공산으로 향했다. 오로지 기도의 한 생각은 부채를 갚는 것이 소원이었다. 살아오면서 신용과 확실함을 나의 생명력으로 알고 살아왔는데, 은행부채는 정말 견디기 힘든 숨가쁜 호흡같았다.
갓바위 부처님 살려주이소. 은행돈 갚을 수 있도록 보살펴 주십사 하는 나의 기도는 3천 약사여래불 주력과 함께 참회의 절을 쉼없이 이끌었다. 건강은 꿈에도 개의치 않았다. 오로지 부채만 사라진다면 그것만으로 행복이라 생각했었다.
새벽까지 끝나지 않는 나의 기도는 추위에 부르르 떨면서, 때론 땀방울을 떨어뜨리는 간절한 기도는 나의 생명을 당신 앞에 두고 시작했었다. 하늘과 갓바위 부처님과 마주하는 주변에 기도하는 사람이 그림자를 세우며 사라져갔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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