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현대불교 신행수기공
모특별상 (신수회 회장상)
최봉종 (대전교도소)
하지만, 거의 새벽까지 매일 연습하다보니 일주일 후에는 4소절 짜리 곡은 눈을 감아도 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방법으로 한곡 한곡 연습했더니 봉축법회 때는 반주가 곁들어진 찬불가 세 곡을 선보일 수 있었다. 중간에 몇 군데 틀려서 당황하기도 했지만, 노래를 마친 후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
나는 그날 난생 처음으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격려를 받았고, 나도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그 후 외부 합창단이 위문공연을 오면 반주자가 어떻게 연주하는가 눈을 떼지 않고 지켜보았다가, 나중에 기억을 되살려 반복해서 연습했다. 설사 천재라 한들 한번 본 것을 그대로 따라 칠 수 없겠지만, 악보를 구해놓고 흉내 내어 보려고 갖은 애를 썼다. 그렇게 조금씩 음악을 알아간 것 같다.
이곳 수용자들이 말하기를 이곳은 봄과 가을이 없다고들 한다. 여름과 겨울이 빨리 찾아오기 때문이다. 겨울의 방안은 밖의 기온과 다를 바가 없어서 겨울에는 장갑 손가락 부분을 잘라서 끼고 연습한다. 그래서 겨울에는 늘 동상 때문에 고생한다.
그런 나의 노력을 가상히 보신 분들의 도움으로 악대반으로 부서를 옮길 수 있었다. 그곳에서 피아노는 물론 여러 악기를 다뤄 볼 수 있었다. 그것이 나에게 크나큰 행운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여러 가지 악기를 익혀보고 각각의 역할과 조화를 이해하게 되면서 음악에 대해 조금씩 눈을 뜨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도움을 주신 분들에게 무언가 보답하고자 교도소에서는 처음으로 제 1회 뮤지컬 ‘진묵대사’, 제 2회 ‘앙굴라마’, 제 3회 ‘조신의 꿈’ 등을 직접 연출하여 대성공을 거두었다. 모든 불자들의 반응은 ‘어떻게 재소자들이 저렇게 할 수 있느냐’는 등 반응이 너무 좋아서 였을까. 교도소사상 처음으로 외부공간인 대전 엑스포 아트홀에서 인간 문화재 공옥진 선생님과 함께 연극 할 수 있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그날 더욱 감격스러웠던 일은 내가 작곡한 노래를 부를 때 이 죄인의 노래에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1999년 8월 현대불교신문에서 보도한 ‘창작 찬불가 공모’를 보고 그간 만들어 놓은 곡들을 불교 담당님께 보여드리고 공모에 응할 수 있도록 부탁드렸다.
사실 응모하면서도 그저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곡들이니까 입상하지 못해도 응모자체로 만족하자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그 곡이 뜻하지 않게 ‘장려상’을 받게 되었다. 미흡하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실력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더욱 분발하라는 의미라고 생각했다.
2001년 8월 제3회 창작 찬불가 공모에서는 악보와 테이프로 예선을 치르고 본선은 대회장에서 직접 노래를 불러야 한다고 했다. 수인의 몸이라 본선 심사에 참석하는 것이 불가능한 나는 예선만이라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드렸다.
나중에 본선에 올랐다는 통보를 받고 그 정도로 만족하자 하고 마음먹었지만 아쉬움을 지울 수는 없었다. 이런 간절한 심정을 아셨는지 본선대회를 며칠 앞두고 소장님께서 참가를 허락해 주셨다.
당일 아침 교도소 직원 3명과 지프차로 5시간 만에 서울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차를 타서 멀미 때문에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도 너무 아파 점심도 못먹은 채 본선 행사를 치렀다. 본선 진출자들의 노래를 들어보니 화려한 그들의 모습이 부러웠고 반면 나 자신은 초라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가시밭 인생길에 쓰러진 나를 일으켜주신 부처님을 생각하며 있는 힘껏 노래를 불렀다.
모든 차례가 끝나고 시상식이 이어졌다. 우수상과 대상이 남을 때까지 내 이름은 불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장려상 정도라도 받아서 돌아가면 애써주신 분들께 덜 죄송스러울텐데, 역시 지나친 기대였나’ 라고 생각한 순간,
“대상!”
“최봉종 작사, 최봉종 작곡의 ‘나유타’!”
우수상보다 먼저 ‘대상’이 발표되었을 때 그 이름이 다른 누군가의 이름인 것만 같았다. 마치 꿈속의 일인 것만 같았다. 시상식을 마치고 어떻게 다시 교도소로 돌아왔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교도소로 돌아와서도 좋은 일은 계속됐다. 무기징역에서 20년으로 감형이 되었고, 2002년에는 사회복지단체나 장애우들을 위한 위문공연도 가게 되었다. 그들의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 비록 보잘 것 없는 죄인이지만 그들을 위해서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자부심에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2003년 11월 27일 ‘귀휴’라는 갑작스런 연락을 받고 당황스러웠다. 제 4회 창작 불교음악제에 참가하라는 것이다. 행사내용은 제 4회 창작 찬불가 공모 입상곡들과 지금까지 ‘대상’을 받은 곡을 세종문화회관에서 발표한다는 것이었다. 꿈인지 생시인지 알 수 없어 살을 꼬집어보고, 두근거리는 마음을 달랠 길 없어 그날 밤을 뜬눈으로 지샜다.
‘16년만의 외출’. 영원히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이곳을 혼자 몸으로 나와 밝은 세상의 땅을 밟은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였다. 학교로 향하는 아이들의 모습, 엄마의 손을 잡고 아장아장 걸어가는 아이의 모습이 얼마만인가.(계속)
신행수기 일년내내 받습니다
삶을 살아가면서 가슴속에만 꼭꼭 담아두었던 감동깊은 신행체험들을 진솔하게 적어 보내주십시오. 연중 접수한 신행수기 가운데 우수작은 신문에 연재하며, 연말에 최종 심사를 거쳐 시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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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량: 200자 원고지 30매 안팎(A4용지 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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