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상 (현대불교신문사장상)
배장환 (서울대 3학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도 아버지께 편지를 쓰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네요. 저도 이제 훌쩍 커버려 어엿한 대학생이 되고, 벌써 졸업이 눈앞에 보입니다. 하지만 여태껏 아버지께 편지 한 통 못 써드린 것이 정말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그래도 이렇게나마 편지를 쓸 수 있다는 사실이 저에게는 큰 행복입니다.
아버지! 추운 겨울이 성큼 다가와 여기 서울은 첫 눈도 내렸답니다. 전화로는 자주 안부 여쭙지만 잘 계신지요? 그래도 부산은 여기보다 조금 더 따뜻하리라 생각됩니다. 이번에 아버지 회갑이신데도 저는 시험이다 뭐다해서 찾아가 뵙지도 못하고…. 아버지께서는 괜찮다고 하시며 방학 때 내려오면 된다고 그러셨지요. 아버지 많이 보고 싶네요. 제가 갑작스레 이런 글을 보내드려서 놀라지는 않으셨겠죠?
제가 대학에 발을 디딘지가 엊그제 같은데 3년이란 세월이 흘렀네요. 아시다시피 저는 대학에 들어와서 쭉 불교학생회에 몸담고 있습니다. 제가 아버지께 많이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여기에서 좋은 경험들도 쌓고, 여름 겨울 방학 때마다 가는 수련대회를 통해 느낀 바도 많아 이렇게 아버지께 글도 쓰고 있습니다.
지난 3년 동안 여러 번의 수련대회를 갔었는데 그 중에서 지난 여름 수련대회가 저에게는 뜻 깊은 경험이었습니다. 1주일 간 진행되는 수련대회에서 관세음보살 정근을 하루에 10시간씩 하며, 저는 이제까지의 ‘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깨버리고 새로운 시각에서 아버지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부터 수련대회에서 느꼈던 점들을 얘기해드릴까 합니다.
스님을 만나기 전, 그 이후에도 저는 제 자신이 남들과 다르게 특별하다고, 잘 났다고 그렇게 생각해왔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최고라고 불리는 대학에 입학해서 별 다른 문제없이 살아가는 동안 저는 다른 사람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러한 생각은 저로 하여금 더욱 더 저 자신이 특별하다고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런 마음이 없다고 부정할 수는 없지만요….
하지만 불교학생회에서 스님의 법문을 들을 수록, 수련대회에 참가할수록 제가 많은 문제들의 틈바구니에 끼어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라고 생각했던 문제가 두 개, 세 개, 네 개…. 점점 불어납니다. 수행을 하면 할 수록, 부처님 공부를 하면 할수록 저의 문제점이 더욱 불거져 나옵니다. 스님께서는 수행을 하면 나아질 것이라고 하시지만 저는 지레 겁이 납니다. ‘과연 수행을 하면 나아질까? 잘 살고 있었는데 왜 이렇게 고생해야하나?’ 점점 회의감이 듭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 보사~알!” 이렇게 높은 소리로 염불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내가 왜 이렇게 사서 고생을 해야 하나?’, ‘할 일도 많은데 여기에 무엇하러 왔나?’하는 생각도 머리 속을 무수히 지나다닙니다. 하지만 “장환씨는 기도를 많이 하셔야 됩니다!”라는 스님의 말씀에, ‘이제는 불교학생회 회장인데 후배들 보기에, 다른 사람에게 안좋게 보이면 어쩌나?’하는 걱정에 조금이나마 힘을 내어 봅니다.
또 다시 제 문제점을 지적 받습니다. 정근을 할 때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는 점. 부처님을 공경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없다는 점. ‘내 딴에는 열심히 한다고 목도 쉬어서 말을 할 수도 없을 지경인데 열심히 안한다니!’ 힘이 쭈~욱 빠집니다. 또 다시 정근 시간이 돌아오고 저는 털레털레 법당으로 향합니다.
한 치의 미동도 없이 꼿꼿하게 앉아계신 부처님을 괜스레 원망스러운 눈길로 바라봅니다. 정근 시간 내내 스님의 말씀이 머리 속을 맴돕니다. 저의 문제점이 모두 아버지를 존중하지 않아서 생겨난 것이라고 하십니다. 따지고 보면 스님 말씀은 틀린 것이 없습니다. 저에게 어떤 마음이 있는지 그것이 왜 이러한 문제를 낳았는지 부처님 법의 성격에 꼭 들어맞게 설명해 주십니다.
정근을 하다보면 여러 생각들이 나곤합니다. 지금은 어렸을 적 아버지의 모습이 파노라마 처럼 흘러갑니다. 분명 입으로는 관세음보살을 외우고 있고, 두 손에는 목탁이 들려있지만 아버지의 모습만이 온 머리 속을 채웁니다.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합니다. 어떤 장면에서는 피식 웃음도 나오고, 어떤 장면에서는 ‘내가 저 때 아버지께 왜 저랬을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아버지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합니다. 금강경에 나오는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라는 구절이 떠오릅니다.
‘어렸을 때 나는 왜 아버지의 행동을 한 쪽으로만 보고 받아드렸을까?’하는 생각에 제가 부끄럽기만 합니다. 서서히 아버지의 좋은 면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부처님의 법이 나에게도 적용되는구나’하는 사실이 마냥 신기합니다. 하지만 스님은 자기 자신에서 아버지의 모습을 찾아야 한다고 덧붙이십니다. ‘과연 아버지의 모습이 있을까?’ 일부러 끼워 맞추려고 이것저것 찾아보지만 잘 보이지가 않습니다.
수련대회가 하루하루 지날 수록 목소리는 점점 잠겨만 가고, 몸도 마음도 축 쳐져갑니다. 정근이 시작되고 저는 법당 왼쪽 벽에 모셔진 지장보살 탱화 앞에 섭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 생각이 또 떠오릅니다. 고등학교 때 럭비를 하셨던 아버지…. 갑자기 아버지의 고등학교 때 모습이 그려집니다. 건장하신 아버지는 럭비 유니폼을 입고 저를 바라봅니다. 아버지가 너무나도 멋져 보입니다. 현재 대학에서 럭비와 비슷한 운동인 미식축구를 하고 있는 제 모습이 아버지의 젊은 모습에 겹쳐집니다. 순간 ‘내가 원하고 바라던 것이 바로 아버지가 하셨던 것과 똑같구나’하는 생각에 눈물이 주르륵 흘러나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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